- 교사의 2월 이야기 (3)
매년 2월, 이맘때면 학교마다 환송회를 하지요. 어제 저희 학교도 환송회를 했는데 당황스러운 일이 많이 일어났어요. 지금까지 이런 환송회는 없었답니다!
상조회에서 준비한 전별금과 함께, 떠나는 13분의 선생님들에게 드라이플라워 엽서에 아쉬움과 고마운 마음을 담아 전해드렸습니다. 전입교사 환영회와 전출교사 환송회 때 선물로 받은 엽서가 선생님들의 책상 위에 오랫동안 자리를 지키면서 그 분의 마음을 훈훈하게 데워주길 바라면서요. 낯선 학교, 새로운 자리에서 조금은 불안한 마음을 달래주고 힘들 때면 작은 위로가 되어주면 좋겠습니다.
다 함께 건배를 하고 부서나 교과, 학년별로 떠나는 선생님들 주변에 모여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한 명 두 명, 여자 선생님들이 눈물을 훔치는 것이 눈에 띄었어요. 떠나는 샘들의 표정은 대체로 밝고 상기되어 있는데, 보내는 샘들이 전염이라도 된듯 여기저기서 울먹이셨지요. 개교 5년차가 되어서 떠나는 샘들이 많은 것은 다른 학교도 마찬가지일텐데 유독 슬픈 환송회가 되고 말았어요. 같은 교과 4명의 선생님을 보내는 신규 3년차 수학과 여자샘은 한 시간 이상을 계속 훌쩍이더니 통곡하기도 했고, 학교 사정으로 아쉽게 떠나는 기간제 선생님의 손을 꼭 잡고 눈물을 닦는 선생님들도 많았습니다.
국어한문과도 두 분의 선생님이 떠나시고 한 분이 휴직을 하게 되었어요. 둥글게 모여 앉아 남아있는 샘들이 준비한 선물을 드리고 기념사진도 찍고 카톡방에서 나가지 말고 번개하면 꼭 나오라고 협박도 했답니다.
집으로 돌아오며 선생님들이 흘린 눈물의 의미를 생각해봤습니다. 전에 있던 학교도 혁신학교였지만 그 정도로 슬픈 분위기는 아니었거든요. '왜 그렇게 많이들 우셨을까?' 생각하다보니, 쌩뚱맞게도 얼마전 <국경없는 포장마차>라는 TV 프로그램에서 본 덴마크 사람들의 '휘게' 문화가 떠올랐어요. 휘게는 가족이나 친구와 함께 또는 혼자서 보내는 소박하고 여유로운 시간, 일상 속의 소소한 즐거움이나 안락한 환경에서 오는 행복을 뜻한다고 하는데요. 빈부격차가 거의 없는 평등한 사회에서 큰 걱정없이 살면서 학교나 직장, 가정에서 틈틈이 차와 음식을 나누며 노래 부르고, 깨끗한 자연환경 속에서 운동하고 힐링하는 것이 덴마크를 행복지수 1위의 나라로 만들었다고 합니다. 또 덴마크 사람들이 행복한 이유는 협동조합, 노동조합, 지역 커뮤니티 등 공동체가 살아 있고, 끊임 없이 자신을 돌아보며 배움을 멈추지 않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고등학교에 진학하기전 1~2년간 머물며 자유롭게 자신과 세계를 탐구하는 기숙형 학교인 애프터스콜레를 다룬 다큐멘터리에서 인상적인 장면이 있습니다. 아침에 일어난 아이들과 선생님들이 한 자리에 모여 인사를 나누고 노래를 함께 부르며 하루를 시작하는 모습이었습니다. 휘게와 배움, 배움과 휘게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다가 하나가 되는 아름다운 풍경화 같은 그림이었습니다.
우리 학교 샘들도 교과별로는 일주일 한 번씩 공강 시간을 맞춰서 차도 마시고 수업이야기도 하고 학기말에는 1박2일 워크숍도 같이 가면서 휘게를 느꼈고, 학년별로는 같은 교무실에서 힘든 일이든 좋은 일이든 함께 나누고 미니체육대회도 하고 아침에 컵라면으로 해장도 하면서 배움과 휘게를 나누어 가진 것 같았습니다. 떠나는 샘들은 신설학교에서 고생도 많이 해서 시원섭섭했겠지만, 보내는 샘들은 그분들을 보며 더이상 소소한 행복을 함께 나눌 수 없다는 생각에 눈물샘이 터지지 않았을까 상상해 보았습니다.
이별이 더욱 아름다운 이유는 역설적으로 인간이라면 누구나 피할 수 없는 숙명이기 때문이겠지요. 이별의 순간을 아름답게 맞이하기 위해 지금 만나는 사람들과 더 많이 배우고 차분하게 나누며 휘게를 즐기고 싶습니다. 2월도 이제 1주일밖에 남지 않았네요. 저 역시 수업에서 만나는 아이들과 교무실에서 만나는 선생님들과 휘게를 더 많이 즐기고 싶어졌습니다. 그렇게 다시 한 해를 보내고 학교를 떠나게 된다면 한 두명이라도 제 손을 잡고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보고 싶은 욕심이 들었습니다.^^; 아름다운 첫 만남의 순간도 기억이 오래 남겠지만, 아쉬움과 미안함과 고마움이 은은하게 빛나는 이별이야말로 삶에서 영원히 잊혀지지 않는 가장 아름다운 순간이 될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