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를 강의로 제대로 가르칠 수 있을까요? 학생들이 민주주의를 설명으로 이해하고 실천할 수 있을까요?
예전에 저는 민주주의를 주제로 수업을 하면서 혼자 흥분하거나 감동해서 목소리가 높아졌고, 아이들이 모둠활동을 할 때 서로 질문하고 경청하지 않는다고 잔소리만 많이 해서 오히려 '독재자'처럼 연설을 많이 하곤 했습니다. 교무실에서 냉수를 마시며 돌아보면 이건 아닌 것 같아서 얼굴이 다시 뜨거워졌었죠.
올해 고1 아이들과 함께 하고 있는 '문학으로 만나는 한국 현대사' 수업에서는 냉정함을 유지하면서 저의 말을 줄이고, 자유로운 분위기와 평등한 관계 속에서 아이들이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기회를 많이 주면서 자연스럽게 민주적 토의의 장점을 체험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70년대 작품인 김지하의 <타는 목마름으로>은 당시 시대 상황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5분 정도 보고 바로 모둠활동을 시작했습니다. <껍데기는 가라> 모방시를 썼던 것처럼 활동지의 문제를 모둠에서 함께 토의해서 발표지에 옮겨 적도록 했지요. 이를 위해 기록자만 민주적으로 정하고, 모두의 의견을 정리해서 적으라고 했습니다. 모둠별로 발표지를 제출하면 칠판에 다 붙여놓고 서로 비교하면서, 차이에서 오는 배움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기를 바랐습니다.
이렇게 발표지를 함께 보면서 답변이 일치하는 것은 그대로 마무리하고, 서로 다른 답변을 적은 모둠이 있으면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서 스스로 잘못된 생각을 바로 잡기를 기대했지요. 하지만 역시 쉽지 않네요. 3월부터 교실에서 계속 모둠활동을 하지 않았고, 온라인 수업을 많이 해서인지 저부터도 아직 모둠활동이 어색합니다.
모둠활동을 할 때 잡담을 하거나 친구가 발표할 때 잘 듣지 않는 아이들이 조금 있는 학급에서는 다시 '주목!'하고 일장 연설을 하고 싶은 욕구가 넘실댑니다. 그래도 수업이 끝날 때까지 잘 참았다가, 다음 시간에 수업을 시작할 때 이렇게 부탁(?)을 했답니다. 권력을 쥐고 흔드는 교사가 아니라, 학습 공동체의 한 일원으로서 솔직한 바람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얼마나 아이들에게 다가갈지 몰라서, 이런 말은 한 달에 한 번만(?) 하렵니다.^^;
"민주주의는 모두가 평등하게 존중받고 참여해서 자기 목소리를 내는 것입니다. 어떤 집단에서 한 사람만 목소리가 크고 말을 많이 한다면 민주적인 관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교실도 마찬가지입니다. 선생님 혼자만 큰 목소리로 설명한다면 교실 속에 민주주의는 없다고 봐도 됩니다. 그래서 모둠활동을 하고, 선생님들도 여러분의 목소리를 듣는 거지요.
그렇다고 민주주의는 n분의 1이 아닙니다. 형식적으로 평등하게 똑같이 역할을 나누고 역할을 못하는 사람을 비난하는 것은 아니라, 친구의 어려움을 살펴서 더 어려운 역할을 자원하는 것도, 친구를 도와주며 호응해 주는 것도 민주적인 태도입니다.그런 관계 속에서 모두가 빛나는 존재가 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