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처 못 다한 이야기, 미처 못 들은 이야기
수업 시간에 미처 못 다한 이야기 때문에 아쉽고 후회한 적은 많지만, 미처 못 들은 아이들의 이야기 때문에 그랬던 적은 거의 없던 것 같습니다. 인터넷에서 검색해봐도 '미처 못 다한 이야기'는 많은 글들이 나오는데(심지어 가수의 앨범 제목도 있고요), '미처 못 들은 이야기'에 일치하는 것은 하나도 없네요.
2월에는 학교마다 워크숍이 있어서 저도 몇 군데의 학교에 다녀왔습니다. 올해부터 혁신학교를 시작하는 경기도의 고등학교와 중학교, 생활지도에 어려움이 많은 농촌 지역 고등학교에 가서 선생님들을 만났지요.
처음에 갔던 고등학교는 극장식 시청각실에서 80분 정도의 선생님들께 이야기를 하는 환경이었습니다. 학급수가 많은 학교라 어쩔 수 없었지만, 저를 응시하는 선생님들의 표정과 몸짓 하나 하나에도 신경이 쓰이고 저의 이야기를 듣고 어떤 생각을 하는지 잘 알 수 없어서 조마조마하기도 했답니다. (제가 원래 멘탈이 약한 아이입니다. ㅠ.ㅠ) 1시간 반동안 수업디자인을 중심으로 이런저런 얘기를 쏟아붓다가 원래 계획했던 질의응답 시간도 갖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돌아올 때는 못 다한 이야기 때문에 후회도 되고, 하지 않았으면 더 좋았을 이야기가 떠올라 얼굴이 화끈거리기도 하고, 잠깐이라도 소통하는 시간을 갖지 못한 것에 대해서 안타깝기도 했습니다. (시청각실 강의의 흑역사가 하나 더 추가되었습니다.)
그 다음에 간 혁신학교를 시작하는 중학교와 농촌 지역 고등학교는 30~40분 정도의 선생님들과 모둠형 배치로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왔습니다. 모둠별로 마주 앉은 선생님들의 표정이 대체로 밝아서 저 또한 마음이 편해졌지요. 새로 오신 선생님들과 기존의 선생님들의 벽트기를 위해 이름으로 삼행시 짓기도 하고, menti.com을 아용해서 '나에게 혁신학교란 ( )이다'로 소통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서로의 이름으로 삼행시를 짓고 환대해주니까 모둠 속의 관계가 말랑말랑해졌고, 서로의 걱정과 기대를 소통하니까 교실의 공기가 더 맑아지고 따뜻해진 느낌이 들었습니다. 저 역시 긴장감이 사라졌고, 선생님들의 관계가 어떤지 그리고 현재 고민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조금이라도 알게 되니까 전하고 싶은 생각과 경험을 섬세하게 꺼낼 수 있었습니다.
교사들의 워크숍이 잘 되는 이유를 생각해봤습니다. 요즘 워크숍에서 일방적인 강의가 거의 사라진 이유도 있고, 모둠 속에 모여 앉은 참여자들의 관계가 평등한 것도 큰 몫을 차지하는 것 같습니다. 모둠 내에 이끄미, 나누미, 기록이, 칭찬이 등 역할을 주지 않고 경험이 많은 교사가 다른 교사를 일방적으로 가르쳐주지 않지요. 또 놀이연수 같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모둠별로 경쟁을 시키지 않습니다. 정답이 뻔한 질문을 던지는 강사도 없고 몇 분내로 활동을 마치고 잘 하면 선물을 준다고 마이크로 쩌렁쩌렁 소리를 지르는 강사도 없습니다.
올해 저는 새로운 아이들을 만나 고2 문학과 독서를 가르치게 되었습니다. 두려움 반, 설렘 반으로 3월 4일이 천천히 오기를 기도했지만 내일이 3월이네요. ㅠ.ㅠ 그래서 더 늦기 전에 올해의 수업목표를 정해보았습니다.
올해는 수업을 할 때 '미쳐 못 다한 이야기'가 아니라 '미쳐 못 들은 이야기'가 없는지 늘 살피고 싶습니다. 교사가 아이들의 말을 경청할 때 아이들이 서로의 말을 경청하게 되고, 교사가 하고 싶은 말을 아끼고 기다릴 때 아이들의 입에서 더 멋진 표현과 감탄사가 나올 수 있겠지요. 그렇게 경청이 교실 속에 자리 잡게 하고, 아이들이 모르는 것을 질문하고 배운 것을 표현하는 소박한 배움의 기쁨이 자라나게 하려면 모둠 속 4명의 관계가 평등하고, 모둠과 모둠의 관계가 평등해야 할 것입니다. 배움의 관계를 평등하게 한 후에 기본적인 예의와 자발성, 적극성을 아이들에게 바라는 것이 올바른 순서가 아닐까 합니다.
물론 그런 관계가 자연스럽게 교실 속에 녹아들기까지 시간이 필요하겠지요. 그리고 학교 안과 밖에 너무 많은 방해물이 버티고 있어서 교사 한 명의 노력으로는 거의 불가능할 것 같습니다. 그래도 아이들이 아이들의 언어로 떠들고 비난하고 불평할 때, 교사는 어른의 언어로 질문하고 설득하고 다독이는 수밖에 없습니다. 동료 교사와 머리를 맞대고 진정한 배움이 일어나는 모둠활동을 함께 고민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아이들이 교사의 정성과 진심을 몰라주고 배신할 때도 있겠지만, '속아준다는 것은 믿어준다는 것이다'라는 말을 되새기고 싶습니다.
공부와 배움의 차이를 아이들과 선생님들께 질문해서 정리해 본 적이 있습니다. 아래의 사진의 '공부' 자리에 '독재'를,' 배움' 자리에 '민주주의'를 바꿔 넣어보면 기가 막히게도 말이통합니다. 경청, 배움, 민주주의 이 세 가지를 붙들고 3월 4일이 오기를 기다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