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4년에 발표한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를 군대를 제대하고 집에서 뒹굴 때인 1995년쯤 본 것 같다.
산업문명이 붕괴하고 천 년쯤 지난 지구는 독을 내뿜는 균 때문에 마스크를 쓰지 않으면 밖에서 자유롭게 다닐 수 없다. 대지와 바다도 황폐해지고 곤충들은 괴물로 변해서 사람들을 위협한다. 다행히 나우시카가 태어난 마을인 '바람계곡'은 늘 바람이 부는 곳이라 마스크를 벗고 생활할 수 있지만, 이 마을을 노리는 외부의 침입으로 위험에 처하게 된다.
이 애니메이션이 만들어진 지 40년이 되지 않았는데, 거리에는 나우시카의 모습을 한 사람들만 가득하고, 바이러스가 모조리 날려보내는 '바람계곡' 마을은 어디에도 없다.
1995년에 바라본 21세기는 사람들이 마음만 모으면 모든 인류가 평등하고 행복한 유토피아가 가능한 시대가 될 것 같았다. 2022년이 다가오는 지금, 앞으로 남은 21세기는 전쟁과 파멸이라는 최악의 디스토피아를 면하면 다행이라는 우울한 생각이 든다.
거의 유일한 희망은 공동체의 위기 앞에서, 다수의 사람들이 현명한 선택을 하는 것밖에는 없다. 나와 내 가족, 자기 나라만 살겠다고 벽을 더 높이 쌓고 재화를 독점하면 무인도에서 목숨만 부지하는 운명의 구덩이 속으로 빠질 뿐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런 지혜, 아니 상식이 통하지 않는 것은, 누군가는 공동체를 위해 자기 것을 먼저 챙기지 않기 때문에 당장 손해를 봐야 한다는 것이다.
직장 생활도 마찬가지이다. 코로나19로 인해 모든 조직이 어려움을 겪고 있고, 변화를 요구받고 있다. 겉으로는 조직을 위해서, 어떤 그럴듯한 가치를 위해서 변화가 필요하다고, 혹은 필요 없다고 주장하지만 사실, 그 안에 자신의 이익이 도사리고 있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코로나19 확진자 수가 연일 기록을 경신하고, 어떤 전문가는 2024년까지 마스크를 써야 할지 모른다고 예언하고 있다. 나약한 인간의 힘으로는 당장 극복할 수 없는 위기 앞에서 나 혼자 살겠다고 먼저 뛰쳐나갈 것인가, 아니면 둥글게 모여앉아 "위험하고 손해를 보더라도, 내가 그 일을 하겠다"라고 말할 것인가? 먼저 나서는 사람이 있다면, 혼자 나서지 않아도 되는 방법이 모두의 지혜 속에서 나오기 마련이다.
그렇게 공동체가 함께 살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 안전한 자신의 마을을 벗어나 위험한 세상 속으로 날아갔던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처럼, 바보 같은 용기를 가진 사람들이 인류의 수레바퀴를 조심씩 앞으로 밀고 나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