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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수샘의 장이불재 Dec 14. 2021

'수능점수'로 만나는 학생은 '너'인가, '그것'인가?

- 마르틴 부버의 '나와 너'를 읽으며

  2022년 수능에서 유일하게 만점을 받은 학생의 인터뷰 기사를 읽고 나서, 고민이 많아졌습니다. 그냥 생각 없이 '팩트'만 전달하는 언론사의 헤드라인이 부러웠지요. '특목고 졸업, 재수생 기숙학원 수강, 대학 합격 후 반수 생활... ' 이 어려운 길을 통과해서 목표를 이룬 만점자 학생의 노력에 경의를 표하지만, 축구나 야구로 프로선수가 되는 것만큼 힘든 길이기에 조심스럽게 보도해야 하지 않을까요?


  이 기사를 읽고 "야, 너두 할 수 있어~"라고 말하는 부모님이나 선생님, 혹은 '아, 나도 할 수 있다!'라고 다짐하는 학생들이 많을 것 같아 걱정이 됩니다. 예전에 "교과서 중심으로 공부했고, 잠은 충분히 잤다"라고 국어책 읽듯 말했던 다른 만점자의 비결보다 훨씬 솔깃하기 때문입니다.


  일단 특목고에 입학해서 수능 공부를 열심히 한 다음, 졸업하고 바로 서울대를 못 가더라도 재수나 반수를 하며 학원 수업을 열심히 듣고, 학원 시간표에 맞춰 규칙적으로 생활한다면 나도 수능에서 거의 만점을 받지 않을까,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이런 씁쓸한 상념 속에서 얼마 전 비문학 독해 수업에서 아이들과 함께 읽은 부버(Buber)의 <나와 너>를 소개하는 글이 떠올랐습니다. 이 글을 읽고 문제도 풀었지만, <생각 넗히기>로 "가족 이외의 사람들과 관계를 맺을 때, ‘나’와 ‘그것’의 관계가 ‘나’와 ‘너’의 관계로 전환되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이 필요한지 적어보자."라는 질문도 던졌습니다.


  부버는 ‘나’를 발견하는 것은 나를 중심으로 한 다른 존재와의 관계 속에서 비로소 가능하다면서, ‘나’가 가질 수 있는 기본적인 관계는 ‘나’와 ‘너’의 관계와 ‘나’와 ‘그것’의 관계, 둘뿐이라고 했습니다. 이때의 '나'는 불변하는 실체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맺는 관계에 따라 바뀌는 특별한 존재라고 합니다.


  다른 사람들과 표면적인 관계를 맺었을 때, 나에게 다른 사람은 '그것'으로 전락합니다. 내가 하나의 기능적으로만 다른 사람과 어떤 일을 처리한다면, 그때의 나는 얼마든지 다른 사람과 대체될 수 있고, 상대방 역시 나에게 하나의 ‘너’가 될 수 없고, 오히려 하나의 ‘그것’으로 전락한다는 것이지요.


  입시에서 대학을 '나'로 본다면 관계를 맺는 방식, 즉 선발 방식에 따라 학생은 '너'도 될 수 있고 '그것'도 될 수 있습니다. 수시 모집에서 대학은 올드보이의 대사처럼 "누구냐 넌?"을 묻는 주체이고, 학생은 '내가 누구인지, 왜 나를 뽑아야 하는지' 답해야 하는 상황이 됩니다. 하지만 정시모집 수능 100% 전형에서는 학생은 내가 누구인지 굳이 답할 필요가 없습니다. 수능 성적표도 자동으로 대학으로 넘어가니까, 철저하게 입시에서 객체인 '그것'이 됩니다.


  부버는 진정한 '나'를 알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과 '너'의 관계를 맺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서로가 무엇으로도 대체될 수 없는 인격 전체로 만날 때, 즉 주체와 주체의 동격 관계로 만날 때 진정한 인간관계가 형성될 수 있고 지속적인 성장도 가능합니다.


  수능 100% 전형이 가장 공정하다고 믿는 분들의 문제의식도 존중하지만, 인생에서 자신에 대한 탐구를 많이 해야 하는 10대에 '나는 누구인가?'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줘야 하지 않을까요? 여러 가지 체험 활동을 하고 낯선 사람들을 많이 만나면서 자신을 알아가는 과정이 있어야, 성인이 되어서 만나게 될 더 어려운 문제도 주체적으로 잘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선진국에서 필기고사 100%만으로 대학 신입생을 뽑자는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거의 없는 것도 그것 때문일 것입니다.


  책상 앞에 외롭게 앉아, '수능이라는 그것'과의 싸움에만 몰두하고 있는 대한민국 학생들에게는 자신을 인격 전체로 대해주는 많은 '너'가 필요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돈, 승진, 성공처럼 수능과 얼마든지 대체 가능한 다른 그것들과 계속 싸우면서 '진정한 나, 진정한 행복'을 찾지 못한 채 나이 들어갈 것 같습니다. 그들이 지켜본 많은 어른들이 그랬듯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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