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21일 TBS 뉴스공장을 듣고, 가수 한영애 님에게 크게 배웠습니다. '수업 기술자가 아니라 수업 전문가로 살기'라는 주제로 선생님들께 연수를 하기도 하는데, 전문가로서 저의 모습을 한영애 님께 비유하자면 정말 호랑이 앞에 하룻강아지 같아서 좀 많이 창피했습니다.
수업에서 가장 빛나는 '진정한 배움의 지배자'가 되기 위해, 무대에서 가장 빛나는 '소리의 지배자'에게 받은 가르침을 기록해 봅니다.
김어준 : 연극을 했던 경험이 노래를 하는 데 도움이 됐어요?
한영애 : 물론이죠. 음악을 바라보는 시선이 공간성에 대해서 확고한 의지를 가지게 되었다고 할까요. '보이는 음악'이라는 단어도 있듯이, 노래를 할 때 입체적으로 불러야 되겠다, 2차원적이 아니라 3차원적으로 불러야 되겠다, 그런 생각을 하는 거죠.
김어준 : 그게 혹시 공연 전날, 꼭 공연장에 가서 공연장 전체를 돌아보시는 것과 연결되는 거예요?
한영애 : 연결되지요. 공연장들이 크기와 모양이 다 다른데, 저 공연장에서 새로운 세상을 만들건 데 그 공간이 우선은 제 손아귀에 들어와야 되잖아요.
이 부분을 들으며, 제가 어디에서 충격을 받았는지 짐작이 되시나요? 객석에서 보이는 자신의 모습을, 관객의 눈으로 미리 바라보고 어떻게 움직일 것인지를 디자인한다는 전문가적 자세에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수업 시작 전, 교실에 먼저 들어가서 교실 분위기를 살핀 적이 몇 번이나 있었나 생각해 보았답니다. 다른 선생님들이나 학부모님이 들어오시는 공개수업 말고는, 거의 없는 것 같아요.
아이들이 발표하는 시간이나 모둠활동을 위한 물품이 많을 때, 미리 교실에 들어가도 고개를 숙이고 수업 준비하는 데 바빴지요. 수업종이 울리기 전에 아이들의 표정과 책상 배치 등을 살피면서 '교사와 학생'이라는 2차원적 관계를 넘어서서, '교사와 학생, 그리고 교실'의 긴밀하게 연결되는 3차원적 상호작용을 입체적으로 구성해 보지 못했습니다.
물론 공개수업을 할 때는 좀 노력하지요.^^; 미리 머릿속으로 언제 모둠을 만들고, 언제 끝내고, 아이들이 모둠 활동을 할 때나 발표할 때 교사가 어떻게 움직여야 하고, 어디에 서있어야 좋은지를 생각합니다. 그러나 일상적인 수업에서는 별생각 없이 돌아다니면서, 오히려 교사가 아이들 간의 소통을 방해하는 순간도 많았던 것 같습니다.
하루에 서너 시간 찾아오는 수업을 의무적으로 해치우지 말고, 한영애 님의 말씀처럼 '저 교실에서 아이들과 새로운 세상을 만든다는 마음'으로 더 섬세하게 준비해야겠습니다. 또 연극 무대에 섰던 경험이 가수로서 콘서트를 할 때 도움이 됐듯이, 교사의 다양한 취미 생활이 수업에 도움이 된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그런데 더 충격적인 가르침은 아래의 대화 속에 있었습니다.
김어준 : 관객이 무대에 있는 나를 바라보는 각도도 재보고. 내가 어떻게 보이는지도 생각해 보는 거예요?
한영애 : 네. 극장을 내 몸에 맞추는 거지요. 그리고 극장 객석에 따라서 티켓값이 다르잖아요. 2층 저 구석에 있는 사람들은 사운드는 둘째치고 일단 가수가 보여야 되잖아요. 이 구석에선 안 보이는구나, 그러면 무대에 한 단짜리 혹은 두 단짜리 계단을 올려 달려든가, 그래서 그들을 위한 마음의 서비스랄까, 그런 것들을 신경 써요.
이 부분에선, 뒤통수를 한 대 맞는 느낌이 아니라 엉덩이를 풀 파워로 걷어차인 듯한 얼얼한 통증이 찾아왔어요. 관객들의 에너지를 최대한 끌어내기 위해 무대 위에서 자신의 동선을 살피고, 공연장의 크기와 구조에 따라 소리를 어떻게 낼 것인지 조절하는 전문가적 모습만으로도 감탄스러운데, 한 명이라도 '소외된 관객'이 없도록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아름다울 정도였습니다.
수업을 하며 '저 아이는 지금 내가 잘 보일까?'하면서 위치를 조정한 적이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오히려 '그래, 수업을 방해하지 않고 조용히 숨어있어서 다행이다'라고 생각하기도 했지요. 모둠을 만들면 교사에게도 좋은 것이, 아이들 모두를 잘 볼 수 있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모둠활동을 위해 교육과정을 재구성하고, 모둠 내에서 협력적 관계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교사가 교실 속에 놓을 수 있는 '한 단 혹은 두 단짜리의 계단'입니다. 배움으로부터 소외된 아이들을 돕기 위한 '마음의 서비스'입니다.
한영애 님이 부르는 <안부>를 다시 듣습니다. 60이 넘은 농가수의 맑고 힘찬 목소리에는 노래 기술자가 아니라 '노래 전문가로서의 자부심'이 투명하게 녹아있습니다. 더 많이 고민하고, 고민한 것을 실천하고, 표정과 몸짓 하나, 말 한마디도 조심스럽게 살피는 과정에서 행복을 찾아가는 전문가의 모습을 닮고 싶습니다. <안부>의 가사처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