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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수샘의 장이불재 Mar 12. 2022

영화 <킹메이커>를 늦게 보길 잘했습니다.

  김대중 대통령과 그의 비서였던 엄창록의 실제 이야기를 극화한 이 영화에서 두 사람은 1961년에 처음 만납니다. 극중 이름은 김운범(설경구)과 서창대(이선균)이지요. 몇 년 뒤 다시 만난 서창대에게 김운범은 이렇게 말합니다.


"자네 말이여. 나 처음 만났을 때 했던 말, 기억하는가? 세상 바뀌는 거 보고 싶다고. 엄한 사람들이 빨갱이로 몰려서 핍박받지 않는 세상, 자기 목소리를 내는데 겁먹지 않고, 국가한테 희생을 강요받지 않는 세상. 그런 세상을 만드는 것이 바로 이 김운범의 대의여."


  김대중 대통령이 3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목숨을 걸로 바꾸고 싶던 세상의 모습을 우리는 이제 당연한 것으로 여기며 살고 있지요. 세상은 지독히도 잘 바뀌지 않고, 바뀌어도 정말 천천히 옳은 방향으로 움직이지만 김대중 대통령이 살아낸 긴 시간에 비하면, 우리는 기다림은 그리 길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조금은 조급함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1971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김운범은 서창대와 다시 논쟁을 벌입니다. 당시의 독재 정권과 마찬가지로 국민을 조작의 대상으로 보고, 국민을 믿지 못하는 서창대에게 김운범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면 저들과 우리가 무엇이 다른가? … 그것은 그저 이기기만을 위한 싸움이여. 아무런 대의 없이 니 편 내 편 진영만 남은 싸움. 저들이 틀렸다고 해서 우리가 다 옳은 것은 아니여."


  '국민을 믿는다는 것, 이기기만을 위한 싸움에서 벗어나는 것' 이런 말의 깊은 뜻을 다 헤아리기는 어렵지만, 학교에서 아이들을 만나는 저에게는 영감을 주는 말이었습니다. '학생을 진정으로 믿는다는 것, 어떤 학생에게 큰 문제가 있더라도 그 아이를 이기기만을 위한 싸움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에 대해 더 고민하고 싶어졌습니다. 그리고 '그 아이가 틀렸다고 해서, 교사가 다 옳은 것은 아니다'라는 것, 이것 하나는 다시 한번 마음속에 새기게 되었습니다.


  다시 세월이 흘러 1988년이 되었고 두 사람은 오랜만에 재회합니다. 이들의 대화에 영화 첫 장면에 나왔던, '달걀을 훔치는 이웃에 대한 대처 방법'이라는 우화가 다시 등장합니다. 수미상관 구성이 돋보이는 결말 장면이지요. '자꾸만 내 닭장에서 달걀을 훔쳐 가는 이웃이 이장의 친척이라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을 때, 어떻게 할 것인가?'라고 서창대가 묻자 김운범은 이렇게 답합니다.


김운범 : 다음날 새로 낳은 닭알을 선물로 줘야지. "의심해서 미안했습니다" 하고. 양심이 있는 인간이라면 뭐 느끼는 봐가 있겠지.

서창대 : 만약에 양심이 없는 인간이라면요?

김운범 : 야단났네. 참 어렵구먼. 아마 자넬 찾아가서 방법을 묻지 않았겠는가?


  김대중 대통령도 빛과 그림자가 있겠지만,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을 품고, '민주주의자'로 살기 위해 분투했던 그의 인간적인 면모가 잘 드러나는 장면이라 가장 인상적이었습니다. 결국, 민주주의자가 독재자와 가장 다른 점은 '인간의 양심'을 믿는다는 것이 아닐까요?


  내가 타인을 선한 의도로 만나고, 누구와도 대화하고 소통하면서 그의 변화 발전의 가능성을 진심으로 믿는다면 타인도 나를 그렇게 대할 것이라는 믿음이 한 인간을 민주주의자로 살게 한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영화 속의 김운범처럼, 학교에서 만나는 아이들과 동료 선생님들 만나기 위해 노력하고 싶어졌습니다. 저의 진심을 몰라주는 사람때문에 힘이 들면, 저도 다른 사람을 찾아가 어떻게 하면 좋을지 물어봐야겠지요. 타인을 의지하는 것, 그것 또한 민주주의자의 자세니까요.


  대통령 선거가 끝나고, 영화 <킹메이커>라도 보길 정말 잘했습니다. 이 영화를 추천해 준 같은 학교 선생님이 정말 고마웠고요. 5년 뒤,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킹메이커>를 다시 보며, 김운범이 서창대에게 했던 말을 떠올리고 싶습니다. 저에게도 다시 질문을 던지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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