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2 문학 수업에 두 작품의 공통점을 발견해서 엮어 읽기를 해보았습니다. 수업 준비를 위해 나희덕의 시 <산속에서>를 읽다가, 드라마 <스물다섯 스물하나>에서 나희도(김태리)가 고유림(보나)을 응원하는 방식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산속에서 길을 잃은 '나그네'가 '먼 곳의 불빛'을 발견한 순간의 정서와 태도를 표현한 시만 읽으면, 너무 예상 가능하고 교훈적인 감상으로 마무리될 것 같아서 고민이 되었어요. 그래서 아이들에게 드라마의 주인공들이 그랬던 것처럼, 자연스럽고 은근하게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위로하고 용기를 주는 방법을 생각해 보게 했습니다.
산속에서
나희덕
길을 잃어 보지 않은 사람은 모르리라
터덜거리며 걸어간 길 끝에
멀리서 밝혀져 오는 불빛의 따뜻함을
막무가내의 어둠 속에서
누군가 맞잡을 손이 있다는 것이
인간에 대한 얼마나 새로운 발견인지
산속에서 밤을 맞아 본 사람은 알리라
그 산에 갇힌 작은 지붕들이
거대한 산줄기보다
얼마나 큰 힘으로 어깨를 감싸 주는지
먼 곳의 불빛은
나그네를 쉬게 하는 것이 아니라
계속 걸어갈 수 있게 해 준다는 것을
<스물다섯 스물하나>에서 펜싱 선수 나희도에게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고유림은 '먼 곳의 불빛'입니다. 원하는 만큼 늘지 않는 펜싱 실력 때문에 나그네처럼 방황하지만, 동갑내기 스타 선수인 고유림의 훈련 모습을 훔쳐보며 희망의 끈을 놓지 않지요. 그러다가 갑자기 내리는 비 때문에 당황하고 있는 고유림을 우연히 발견하고, 학교 옥상에 올라가서 활짝 펼친 우산을 던져 줍니다.
고유림은 놀라서 위를 쳐다보지만, 사람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먼 곳에서 자신을 응원하는 '누군가'의 목소리를 듣습니다. 고유림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자신을 말없이 지켜보다가 필요한 순간에 도움을 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가슴 벅차합니다. 드라마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면 중에 하나였습니다.
학급별로 만든 패들렛에 아래처럼 자신이 '나그네' 혹은 '먼 곳의 불빛'이 되었던 경험을 적거나, 앞으로 '나그네'와 같은 사람을 어떻게 위로하고 응원하고 싶은지를 적게 했습니다.
아이들이 올린 글을 읽고 '좋아요'를 누르다가 문득 이런 고민이 생겼습니다. 패들렛에 자신의 이름으로 생각이나 느낌을 올리지 못하는, '수업 속에서 길을 잃은 나그네'와 같은 아이들에게 저와 다른 아이들이 어떻게 '먼 곳의 불빛'이 될 수 있을까요? 지름길은 없겠지만, 표현을 주저하는 아이들도 항상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면서, 작은 용기라도 낸다면 크게 기뻐하면서 오버하고 싶습니다. 다른 친구들이 그렇게 해준다면 더욱 힘을 내겠지요.
성장기를 거치면서 세찬 비를 맞고 있는 아이들이 '하늘에서 우산이 내려오는' 작은 기적을 경험하면 좋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