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교사의 3월 이야기(3)
3월 4일 새 학년이 시작되는 날, 작년까지 2년간 국어 시간에 만났던 아이들을 복도에서 만났는데 한 아이가 쪼르르 달려와 이렇게 얘기합니다. "민수샘, 저 어젯밤에 선생님과 수업하는 꿈을 꿨어요." 그리고는 알 수 없는 표정을 남기고 다시 뛰어가더군요.
3월 5일 저녁에는 전입교사 환영회를 했는데, 작년 2학년 담임 선생님 한 분이 고3이 된 아이가 교무실에 찾아와서 이런저런 얘기를 하던 중에 "민수샘 없는 국어시간이 상상이 되지 않아요."라면서 저를 그리워하더라고 덕담을 해주었습니다.
사실 작년말에 전에 근무했던 학교로 다시 갈까 말까 고민이 참 많았는데, 남기로 결정한 이유 중에 하나가 2년간 가르친 아이들을 고3때도 만나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습니다. 그동안 아이들과 함께 했던 글쓰기를 잘 살려서 자기소개서 쓰기도 도와주고 싶고, 각자 자기의 갈 길을 찾아 떠나는 모습을 졸업식 때 보면서 남몰래 뭉클해지고 싶다는 낭만적인 상상도 했었지요. ㅋㅋ 아쉽게도 고3을 맡지 못했지만 저를 떠올려주는 고3 아이들이 몇 명은 있는 것 같아 조금 위안이 되었답니다.
물론 대부분의 아이들은 복도에서 제가 먼저 반갑게 "어이~ 고3, 벌써 3학년이네"라고 인사를 해도 '하하, 호호' 하고 지 갈 길을 갑니다. 어떤 아이에겐 "자소서 쓸 때 힘들면 찾아와. 샘이 도와줄게"라고 했다가 속으로 '이거 소문나서 너무 많이 찾아오면 어떡하지?' 괜한 걱정도 되더군요.^^; 그리고 작년 담임선생님에게 수다를 떨러오는 아이들은 있지만, 제가 있는 교무실에 일부러 저를 찾아오는 아이가 없어서 부럽기도 했습니다. 좀더 살갑게 대할걸 후회도 되고요. 금요일에는 '민수샘~'하고 등 뒤에서 저를 부르는 고3 아이들이 몇 명 있어서, '아, 드디어 올 것이 왔는가'하고 혼자 좋아했었는데 '샘, 올해도 자율동아리 맡아주실거죠?'라고 해서 조금 실망했지만 그래도 반가웠답니다. ㅎㅎ
2년동안 국어시간에 아이들을 만나면서 바쁘다는 핑계로 아이들을 더 자세히 보지 못했고, 욕심을 버리고 아이들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오랫동안 보지도 못했던 것 같아 미안한 마음도 듭니다. 새롭게 만나는 고2 아이들과 다시 짝사랑을 시작하며 교사의 숙명과 한계를 생각해 봅니다. 먼저 다가가도 먼저 잊혀지는 존재라 할지라도 아이들의 성장을 위해 어설픈 짝사랑이라도 마음껏 해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