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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수샘의 장이불재 May 20. 2022

'욕심은 낮추고, 자율성은 높이고, 책무성은 적당히'

- 배움의공동체 모둠활동의 방향 찾기

  교과서에 실려 있는 소설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는 단편이라, 중략된 부분을 복사해서 나눠주고 전편을 읽히고 싶었습니다. 시험만을 위한 짧은 호흡이 아니라, 긴 호흡으로 전편을 다 읽으면서 아이들 모두가 소설 읽기의 재미를 느끼게 해주고 싶었습니다.

  이런 바람으로 교과서에 없는 부분을 나눠주었는데, B4 6쪽 정도의 분량이었습니다. 그리 많은 것 같지 않아서, 각자 읽고 퀴즈를 만들어서 모둠 내에서 먼저 풀어보고 다른 모둠의 문제도 함께 풀어보면서 전체 내용을 파악하게 한다는 목표를 세웠어요.

  그런데 결과적으로 제가 수업하는 3개 학급의 활동 방법이 모두 달랐습니다. ㅠ.ㅠ 기대했던 것만큼 중략 부분을 읽히기 어려웠습니다. 이것이 지난번에 '수업 시간 두통의 원인을 찾아서'를 쓰게 된 계기가 되었지요.

  아래는 소설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의 중략 부분을 읽고, 모둠별로 퀴즈 만들기를 위한 활동의 변천사입니다. 난이도, 자율성, 책무성을 기준으로 실패의 원인을 나름대로 분석해 봤어요.


1. 첫 번째 학급

"각자 중략 부분을 읽고 포스트잇 2장에 질문 2개를 만들어 적으세요. 모둠 내에서 질문을 서로 발표하면서 함께 풀어본 후, 3~4개를 골라 모둠 질문으로 제출하세요"


- 활동 난이도 : 높음 (각자 전편을 다 읽고 퀴즈를 만들어야 함)

- 모둠 내 자율성 : 적음 (각자 퀴즈를 먼저 만들고, 그중에서 고르기)

- 모둠 내 책무성 : 높음 (포스트잇에 퀴즈를 적지 않으면, 제출할 것이 적어짐)

* 활동 결과 : 난이도는 높은데 자율성은 적고 책무성이 높이니, 포기하는 아이들이 늘어났고 문제의 수준도 대체로 높지 않음.




2. 두 번째 학급

"모둠에서 사회자와 기록자를 정한 후 중략 부분을 함께 읽으면서, 퀴즈를 5문제 이상 만들어서 제출하세요."


- 활동 난이도 : 높음 (처음부터 각자 읽지는 않지만, 전편을 다 읽고 퀴즈를 만들어야 함)

- 모둠 내 자율성 : 많음 (역할 정하기, 친구들의 속도를 고려하여 함께 읽기, 알아서 퀴즈 제안하기)

- 모둠 내 책무성 : 낮음 (사회자, 기록자가 아니면 부담감이 없고, 각자 만들어야 하는 퀴즈 개수가 없음)

* 활동 결과 : 난이도는 높았으나 자율성이 많고 책무성이 낮으니, 포기하는 아이들이 거의 없었고 소설을 읽으면서 친구들에게 질문을 하기도 함. 그러나 읽어야 할 분량이 많아서인지 모둠별로 문제의 수준 차이가 컸음.



3. 세 번째 학급

"모둠별로 중략 부분을 나눠서 함께 읽고, 4문제 이상 퀴즈를 만들어서 제출하세요."


- 활동 난이도 : 낮음 (우리 모둠이 맡은 한두 쪽만 읽고 퀴즈를 만들면 됨)

- 모둠 내 자율성 : 많음 (역할도 알아서 정하라고 했고, 상황에 맞게 퀴즈를 만들면 됨)

- 모둠 내 책무성 : 보통 (주도하는 학생이 있지만, 의무적으로 만들어 하는 퀴즈 개수가 없음)

* 활동 결과 : 난이도가 낮으니 자율적으로 역할을 정하기 편했고, 역할 없이 함께 대화를 나누며 퀴즈를 제안하고 다듬어서 수준이 높았음. 주도적으로 활동하는 학생들과 옆에서 도와주는 학생으로 구분되는 모둠도 있었으나, 아예 참여하지 않은 학생은 교사가 돌볼 수 있는 정도로 적었음.




  이렇게 거칠게 분석해 보았지만, 세 번째 학급의 활동 방식만이 정답은 아니겠지요. 다만 욕심을 낮춰고 처음부터 각자 읽어야 할 분량을 줄여주니, 읽기 싫어하는 학생에게 "여기부터 여기까지만 우선 읽고 친구들과 퀴즈를 만들면 돼" 하고 설득할 수 있어 좋았습니다.

  그리고 역할을 교사가 정해주거나 알아서 정하라고 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수업 목표가 '소설 전편을 읽으며 재미를 느끼게 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직접 퀴즈를 만들지는 못해도 자신의 모둠이 맡은 부분은 읽고 나서 친구가 만든 문제에 의견을 말하는 것처럼 '느슨한 책무성'을 갖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다음 시간에는 모둠별로 출제한 퀴즈를 모아서 전체가 볼 수 있도록 공유했고, 모둠 내에서 함께 풀어보면서 지난 시간에 읽지 못한 부분까지 다시 읽어보도록 했습니다. 이렇게 우여곡절이 많았던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 읽기 수업이 끝났습니다. 모둠활동이 아직 어색한 저와 아이들을 위해 '욕심은 낮추고, 자율성은 높이고, 책무성은 적당히^^', 이런 기조를 당분간 유지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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