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방학을 하고 이틀간 집에서 먹고 자고 놀고 자며 '나 혼자 산다'를 찍다가, 사흘째 되던 날 이불을 박차고 홀연히 집을 나서 1박2일 연수를 다녀왔어요. 코로나 이후 2년 반만에 <참여소통교육모임>의 숙박연수에 참여한 것이지요. 그립던 선생님을 만나 회포를 풀었던 것도 즐거웠고, 연수 주제와 강의 모두가 훌륭했습니다.
'혐오의 시대, 공존의 교실'을 만들기 위해 교사가 어떤 철학을 가지고 동료 교사와 학생들, 학부모님들을 만나야 할 것인가에 관해 많은 것을 생각하고 결심하게 되었던 연수였습니다. 우리나라 청소년들의 건강한 성장을 위협하고 있는 '혐오 문화'의 극복 방안에 대한 실마리를 찾을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어요.
어떤 사회 문제를 다루는 뉴스, 책, 강연을 접하다 보면 상황의 심각성은 지나치게 생생하게 보여주지만, 이어지는 해결책은 전문가의 당위적인 말 몇 마디나 공문의 상투적인 단어의 나열로 끝나서 허탈적이 많았는데 이번 연수는 달랐습니다. 혐오의 반대편에 떠있는 무지개를 찾은 기분이었지요. 일상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혐오의 반대말을 찾아보고, 이것을 실천하기 위해 노력한다면 혐오의 시대를 건너는 다리를 함께 놓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첫 번째 강의에서 천관율 기자님께는 혐오를 극복할 수 있는 '연대의 원리'를 배웠습니다. '경쟁의 결과에 개입하는 반칙과 특권을 용납하지 않는다'라는 '공정의 원칙'은 지켜야 하지만, 경쟁의 결과에 개입하는 '모든 시도'를 불공정으로 간주하는 '공정의 역습' 현상이 혐오 문화를 재생산하고 있다는 진단은 탁월했어요. 약자와 소수자에 대한 지원이 반칙과 특권인지 아닌지를 논하는 사려 깊은 공론장에 들어오지 않고, '공정'을 홀로 떨어져 있는 개념 덩어리로 만든 후에 정답을 정해놓고 경쟁의 결과에 개입하려는 모든 시도를 비난하고 반대하는 집단이 혐오 문화를 만든다는 것입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구체적인 삶의 경험을 통한 연대의 복원'이 필요합니다. 밀레니얼 세대가 갖고 있는 추상적인 공정 감각은 '구체적인 타인과의 만남이 주는 구체적인 삶의 경험'이 사라진 자리에 생겨난 약한 고리라고 합니다.
제가 있는 학교에서도 코로나19 이후 2년 동안 농촌봉사활동과 통합기행을 가지 못하고 교실 속 모둠 활동에도 제약이 많았어요. 학생 주도의 체험활동을 함께 기획하고 민주적으로 회의를 진행하는 경험과 남녀 학생이 한 모둠이 되어 공감하고 협력하면서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는 성취감을 거의 느끼지 못했지요. 그래도 올해는 체험활동과 모둠학습을 많이 해서 그런지, 여학생과 남학생이 어울려서 장난치고 공부하면서, 서로의 불안을 토닥이고 실패를 격려하는 모습을 자주 보게 됩니다.
심각한 학폭을 다룬 영화 <니 부모 얼굴이 보고싶다>에 등장하는 학교는 명문 국제 중학교이고, 피해자는 사회적 배려 대상자로 입학한 학생입니다. 경쟁을 부추기는 제도와 교사들이 가득한 이 학교에서 '힘들게 살아가는 대한민국 10대 학생'이라는 공통점보다 성별, 성적, 외모, 성격, 환경 차이가 부각되면서 차별과 혐오라는 독사가 스멀스멀 기어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쓰다 보니 조금 길어졌네요. 이번엔 이만 줄이고, 다음에는 제가 좋아하는 엄기호 교수님에게 얻은 통쾌한(?)한 배움을 말씀드리겠습니다. 혐오에서 벗어나 공존의 시대로 가기 위해 건너야 할 징검다리에는 연대도 있지만, '분노'도 있다고 합니다. 차별을 조장하고, 차별을 은폐하고, 차별을 즐기는 사람들에 대한 정당한 분노가 왜 필요한지, 우리 모두에게 어떤 능력이 필요한지 다시 생각해 보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