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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수샘의 장이불재 Aug 20. 2022

영화 <헤어질 결심>의 여운

-  품위가 자부심에서 나온다면, 자부심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일주일이 넘었지만, 영화 <헤어질 결심>의 인상적인 장면과 명대사가 문득문득 생각나네요. '서래(탕웨이)가 왜 그런 선택을 했을까' 고민도 되고, '붕괴... 마침내...' 같은 대사의 여운도 천천히 즐기고 있답니다. 모든 명작이 그렇듯, 시간이 지날수록 잔상의 세례에 촉촉이 젖는 느낌이 싫지 않아서, <헤어질 결심>이 진짜 좋은 영화라는 것을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박찬욱 감독이 여기저기 던져 놓은 질문 중에 유독 '품위와 자부심'에 대해서 멋진 대답을 돌려주고 싶은 욕심도 생겼어요. '해준(박해일)' 피의자로 만난 서래에게 끌리게 되면서, 자신의 직업 정신이 말 그대로 붕괴하고 있다고 고백하는 장면에 나온 말인데 정말 멋져서 심장을 어택했지요.

  정확한 대사가 기억나진 않지만, 해준은 서래에게 "당신은 내가 품위가 있어 좋다고 하는데, 품위가 어디에서 나오는지 알아요? 자부심에서 나와요. 하지만 당신을 만난 후부터는 그것이 붕괴되고 있어요."라고 말합니다.



  품위가 자부심에 나온다는 말에 동의합니다. 해준은 서래를 처음 만날 때부터 사무적으로 대하지 않고 의견을 물어보고, 계속 우아한 경어체를 쓰면서 한국어가 서툰 것까지 배려합니다. 서래가 너무 예뻐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후배 경찰이 다른 피의자에게 폭력을 쓰려고 하니까, "경찰이 그러면 안 된다고 몇 번을 말했냐" 하고 질책하는 것을 보면, 평소에 경찰로서 자부심이 충만한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해준의 그런 꼿꼿한 경찰관으로서 자부심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요?

  먼저 자신이 선택한 일에 대한 자부심이 타인의 선택에 대한 존중으로 확장된 것 같습니다. 경찰로 살아가는 삶이 소중하듯, '다른 사람의 삶도 존중하는 태도'에서 자부심이 나오는 것이지요. 서래가 최선을 다해 일하는 간병인이었기에 해준은 그녀에게 좀 더 품위를 지켰고, 그래서 서로의 매력에 더 빨리 빠져들어간 측면도 있을 것 같아요.

  두 번째는 자신의 '완벽하지 않음에 대한 인정'이 역설적으로 긍지를 낳게 한 것 같습니다. 범인을 검거하지는 못했지만, 언덕과 높은 계단을 줄기차게 뛰어올라는 해준의 진념과 체력은 대단했습니다. 실패의 가능성을 항상 염두에 두었기에 평상시에 자신을 관리하며 노력했을 것이고, 그런 시간들이 해준의 자부심에 불쏘시개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 <헤어질 결심>은 자부심의 사전적 정의를 뛰어넘을 수 있는 즐거운 사색을 하게 해주었습니다. '자기 자신이나 자신의 일에 대하여 스스로 그 가치나 능력을 믿고 당당히 여기는 마음'이라는 정의 속에, '타인의 가치도 존중하고, 자신의 능력을 의심하고 노력하는 자신을 당당히 여기는 마음'을 스스로 추가해 봅니다. 이런 타인과의 관계 맺기와 인간으로서 불완전함이 오히려 '사람이 갖추어야 할 위엄이나 기품'이라는 품위의 정의를 완성해 가겠지요.


  그런데 말입니다. 영화 <헤어질 결심>은 이런 인간의 자부심보다, 품위보다 더 강하고 치명적인 것이 바로 '사랑'이라고 고요 속에 계속 외치고 있네요. 이 영화는 도대체, 아니 마침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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