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쁘띠바크, 스크리블 타임, 너도 나도 파티
지난 여름방학의 교사 연수에서 배웠던 공동체 놀이 세 가지로 2학기 수업을 시작했습니다. 개학 전날까지 아이들의 성적과 성향 등을 참고해서 3~4명씩 모둠을 편성하고, 상황에 맞게 수정해서 공동체 놀이 활동지를 완성하니 개학일이 아주 많이 부담스럽지는 않았답니다.^^;
모둠별로 앉게 한 후, 가장 먼저 한 것은 프랑스어로 '작은 시험'의 뜻을 가진 '쁘띠바크 놀이'입니다. 먼저 모둠별로 1장씩 활동지를 주고, 모둠별로 돌아가며 하나씩 선택한 자음으로 시작하는 7개의 단어를 협력해서 쓰게 합니다. 가장 빨리 한 줄을 다 채운 모둠이 빙고를 외치면 '부르는 모둠'이 되어 한 단어씩 부르면서 점수를 더 많이 얻을 수 있습니다. 부르는 모둠이 적은 단어가 다른 모둠에 없으면 10점을 얻고, 다른 모둠에 있으면 그 모둠이 10점을 땁니다.
'쁘띠바크'는 특정 자음으로 시작하는 조금 낯선 단어를 적어야 다른 모둠이 안 적기 때문에, 모둠 내에서 머리를 맞대고 협의해야 해요. 그러니까 서로의 의견을 듣고 조정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소통하게 되고, 점수를 얻으면서 성취감도 느낄 수 있겠지요. (파일도 첨부하니, 제시어는 바뀌셔도 됩니다. 더 자세한 내용은 '쁘띠바크'로 검색해 보세요)
두 번째 활동은 교사가 단어를 20개씩 3초 간격으로 부르고, 학생들은 말 그대로 scribble, 낙서하듯 그림을 휘갈기는 '스크리블 타임 놀이'입니다. 글자나 숫자는 쓸 수 없고, 자신이 기억하기 쉽게 어떤 형태로든 그림을 그려야 합니다. 20번째 단어까지 끝나면, 다시 기억력을 동원해서 위 칸에 단어 20개를 다 적고 '빙고'를 외치면 끝납니다.
저는 모든 모둠원이 서로 비교해 보고, 각자의 활동지에 단어 20개를 정확히 적으면 빙고를 외치라고 했어요. 개인전이 아니라 모둠전인데, 참여 의지가 적은 학생도 친구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 나름 열심히 그리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처음에는 비교적 쉬운 단어로 했는데, 두 번째에는 국어과 독서 과목을 배우는 고2 학생들이라 '경청, 수능, 교양, 평등, 지식, 희망' 같은 추상어를 많이 집어넣었어요. 특히 '교양과 지식'은 독서의 목적 중에 양대 산맥이기 때문에, 아이들이 이 단어를 어떻게 표현했는지 비교해 보면서 앞으로 배울 과목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옆이나 다른 모둠의 친구들이 '수능, 평등, 그리고 민수쌤(!)'을 어떻게 그렸는지 훔쳐보고 끽끽대는 모습도 보기 좋았어요. '너도 나랑 비슷하게 그렸다'라며 공감하기도 하고, '너는 진짜 기발하게 그렸네'라고 칭찬해 주는 훈훈한 분위기였습니다. (역시 아래에 파일이 있으니, 더 재미있는 반응이 나올만한 단어를 포함해서 도전해 보세요~)
마지막은 '너도? 나도~ 파티'입니다. 이번에는 교사가 말한 단어를 듣고 생각나는 단어를 6개 적는 활동입니다. 다른 친구들이 내가 적은 단어와 같은 것을 적어야 점수를 획득할 수 있기 때문에, 쁘띠바크와 다른 사고방식이 필요하지요. 나와 똑같은 단어를 적은 사람이 없으면 점수를 못 따지만, 1명이라도 나와 같은 단어를 적으면 두 사람 모두 2점을 얻습니다. 즉 부르는 사람 포함해서 나온 단어의 개수만큼 점수를 얻는 것이지요. 모둠 내에서 하든, 학급 전체가 하든 한 명씩 자신이 적은 단어 6개를 말하게 하고, 다음 사람은 중복되지 않는 단어를 말하면서 진행하면 됩니다.
그래서 학급 전체로 할 때는 학급 인원수만큼 점수가 나올 수 있어요.또 단 2점이라도 멀리 앉아 있는 친구가 나와 같은 단어를 적으면 서로 얼굴을 보며 아주 반가워하더군요. 그리고 점수에 상관없이 특이한 단어를 적은 학생도 자신의 개성적인 정신세계를 뽐낼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했답니다.
저는 1라운드는 모둠 내에서, 2라운드는 학급 전체에서 했는데 학급마다 반응을 보며 단어를 조금씩 바뀌었어요. (6개 칸이 있는데 시간이 부족해서 4개 칸만 채웠네요.) 처음에는 좀 가벼운 주제의 단어인 '아이돌, 방학, 음식'을 듣고 떠오르는 단어를 적게 했습니다. 음식은 무인도에서 6개의 종류만 먹을 수 있는 상황을 가정해서 적으라고 했지요. 두 번째는 '대학, 독서'를 제시어로 말했 줬습니다.
세 번째 활동지 아래에 '오늘 활동을 하며 느낀 점'도 적게 한 후, 몇 사람의 소감을 들어보고 2학기 첫 두 시간 수업을 마무리했습니다. '대학'이란 단어를 듣고 '술, CC, MT, OT, 클럽, 신촌'을 적은 아이는 '나만 대학 가서 놀 생각을 했구나 깨닫는 시간이었다'라고 적어서 크게 웃었어요. 그리고 '독서'라는 단어에는 '비문학, 고난도, 경제지문, 과학지문'이라고 적은 아이들도 꽤 있어서 놀랐습니다. 독서 수업을 시작하면서 아이들이 걱정하는 마음도 알 수 있어서 의미가 있었어요.
앞으로 교과서 제시문을 읽고 수능 유형의 문제를 풀 때도, 이번에 했던 공동체 놀이 세 가지를 변형해서 활용해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평등하고 편안하며 수준 높은 모둠활동'은 무척 어려운 과제라서, 진지한 접근도 필요하지만 때로는 가벼운 놀이를 통해 의미 있는 시간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니까요. 저와 하는 수업이 '항상 특이하고 즐겁다'라고 격려해 주는 아이들을 믿고 도전해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