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디지털 세대에게 해주고 싶은 말
디지털 세대 선생님들께 해주고 싶은 말을 우연히 방송에서 들었습니다. '디지털 세계는 0과 1의 선택밖에 없지만, 현실 세계에서는 0과 1 사이에도 무수히 많은 수가 있다'라는 내용이었습니다. 물론 0과 1의 조합으로 엄청난 그래픽을 만들어내고 복잡한 계산도 몇 초 만에 끝내지만, 그래도 디지털 언어는 0과 1의 배열이 반복되는 것이니까 인간 세계의 '엄청난 복잡함'을 표현하기에는 한계가 있겠지요.
그래서 인간 세계의 언어는 '대화'입니다. 어려운 문제일수록 혼자만의 판단으로 해결할 수 없는 것이 자명한데, 성급하게 '이것 아니면 저것'을 택하다 보니까 나쁜 패를 집어 들게 되고 이를 만회하려다 더 큰 실수를 하게 됩니다.
누구든 두 가지 중에 하나를 택해야만 하는 상황에서 고민이 될 때, 최선의 방법은 누구든 붙잡고 대화를 하는 것이 아닐까요? 두 가지 외에 다른 것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문제도, 당사자들이 아닌 다른 사람과 얘기하다 보면 '이편저편' 외에 '그편'이 보일 수도 있습니다.
지난 9월 1일 저녁, 배움의공동체 용인연구회에서 '평등하며 편안한 관계 만들기를 위한 모둠세우기 활동'을 주제로 저의 활동 사례를 소개하고 시간을 가졌습니다. '4글자 이름짓기'와 '모둠활동으로 릴레이 시짓기'로 어색한 분위기를 녹이고, '쁘띠바크 놀이, 스크리블 타임, 너도 나도 파티' 세 가지로 서로 공감하며 소통하는 따뜻한 시간을 체험할 수 있게 노력했어요.
이번 연수에 참여하신 분들도 어쩌면 '0과 1의 선택' 사이에서 왔다 갔다 하는 것이 힘들어서 '대화가 필요해'를 속으로 외치며 평일 저녁 퇴근 후에도 달려오셨겠지요. '모둠 활동을 해야 되나, 말아야 하나?', '모둠을 구성한 후 관계 만들기 활동을 따로 해야 하나, 안 해도 되나?', '퀴즈나 게임 활동을 하면 도움이 될까, 안 될까?' 이런 고민에 한 가지 정답만 있었다면, 이번 연수는 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어렵고 복잡하지만 꼭 풀어내야 하는 문제는 '인간관계의 어려움과 복잡함'이 원인인 경우가 많습니다. 수업이 그렇고, 모둠활동이 그렇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이성과 감성의 힘을 믿고, 인내심을 가지고 대화를 통해 해결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아무리 재미있고 화려한 모둠활동의 기법도 이런 대화가 없다면, 불꽃놀이 같은 짧은 쇼일뿐입니다.
지난주에는 광주광역시의 중학교에서 '배움중심수업'을 주제로 연수를 하고 왔어요. 예전에 인연이 있던 선생님의 초대였고 오후 수업이 없는 날이라, 3시간 조금 넘게 운전을 하고 가서 두 시간 조금 안 되게 선생님을 만나고, 다시 3시간을 달려 돌아왔지요. 저는 아날로그 세계에서 청소년기를 보냈지만, 학교나 학교 밖 연수에 만나는 선생님들은 디지털 세대인 경우가 더 많습니다. 광주에서 만난 선생님들은 '대화할 준비가 되어 있는 분'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연수 시간은 물론, 오고가는 운전 시간이 힘들지 않았어요. ^^
앞으로 저의 말을 더 줄여야겠다는 다짐을 다시 해봅니다. 선생님들과 대화를 나누며 저의 경험을 보태거나, 선생님들이 대화를 나누게 도우면서 스스로 고민 해결의 실마리를 찾는 모습을 지켜보고 싶습니다. 혹시 "선생님의 연수를 들으니 고민이 더 많아집니다. 배움중심수업에서 모둠활동이 잘 되게 하는 가장 좋은 방법을 추천해 주세요"라고 질문하는 분이 있다면, 앞으로는 이렇게 대답할 수밖에 없겠네요.^^;
"선생님, 배움중심수업과 모둠활동은 디지털 세계의 활동이 아니지요. 0과 1 사이에도 무수히 많은 수가 있는 것처럼, 선생님에게 가장 좋은 수를 찾기 위해 아이들, 동료 선생님들, 그리고 스스로와 천천히 대화해 보시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