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마지막으로 국어 수업 모둠을 편성하다 보니, '모둠 자리표'에 관한 심리학적 고찰(?), 아니 고민이 많이 생겼습니다. 모둠 구성은 랜덤 뽑기로 2~4주 정도, 자주 바꾸는 것이 좋다고 하지만, 저는 안정적 관계 형성을 위해 한 학기에 두 번만 바꾸다 보니 고민이 깊어집니다.
고등학생이라 나름대로 호의를 갖고 관계를 맺으며 역할 분담을 알아서 하는 모둠도 많지만, 교사가 다가가지 않으면 한 마디도 하지 않는 모둠이 생기기도 합니다. 모둠별로 학업 의지나 능력 차이가 크면, 어떤 모둠은 교사가 지나치게 개입해서 오히려 배움을 방해하고, 어떤 모둠은 자유를 넘어 방임으로 흘러가 자칫 배움이 느슨해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능력과 개성이 서로 다른 아이들이 같은 모둠이 되어, 서로 배울 수 있는 기회를 많이 주기 위해 최대한 섞으려고 노력해 왔습니다. 어떤 학급은 이전 모둠 배치표를 다 열어놓고, 아이들을 여기저기 넣고 옮기느라 30분 이상 걸리기도 해요.^^;
아래 표처럼 남녀 비율도 고려해야 하고, 그동안 관찰했던 것을 바탕으로 서로의 친소 관계를 반영하기도 합니다. 또 학급에 따라 4명 모둠, 5명 모둠, 여학생만 있는 모둠에 누구를 넣을지 머리가 아프기도 하고요.
오늘 출근길에 우연히 '더닝 크루거 효과'에 대해 들었습니다. 이것은 미국 코넬 대학교의 데이비드 더닝과 저스틴 크루거가 1999년 제안한 것으로, 학부생을 상대로 독해력, 자동차 운전, 체스, 테니스 등 여러 분야의 능력을 실험하여 '능력이 없는 사람'이다음과 같은 경향을 보인다는 것을 밝혀냈다고 합니다.
1. 자신의 능력을 과대평가한다.
2. 다른 사람의 진정한 능력을 알아보지 못한다.
3. 자신의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생긴 곤경을 알아보지 못한다.
4. 훈련을 통해 능력이 매우 나아지고 난 후에야, 이전의 능력 부족을 알아보고 인정한다.
자신보다 능력이 뛰어난 친구와 같은 모둠이 되어 '다른 사람의 진정한 능력'을 알게 되고, '자신의 능력 부족'도 인정하게 되려면 한 달 이상의 안정적인 관계 맺기가 필요하다는 제 생각에 심리학적 근거를 찾게 된 것 같아 반가웠습니다. 그리고 더닝과 크루거는 자신들의 연구에 영감을 준 명언도 소개했습니다.
- 찰스 다윈, “무지는 지식보다 더 확신을 가지게 한다.”
- 버트런드 러셀, “이 시대의 아픔 중 하나는 자신감이 있는 사람은 무지한데, 상상력과 이해력이 있는 사람은 의심하고 주저한다는 것이다.”
다윈과 러셀의 말처럼 능력이 없는 사람은 자신의 실력을 실제보다 높게 평균 이상으로 평가하여 우월감을 갖게 되는 반면, 능력이 있는 사람은 자신의 실력을 과소평가하여 열등감을 가지게 됩니다. 다양한 능력을 가진 학습자가 평등한 관계 속에서 수준 높은 배움을 추구하는 경험을 공유한다면 이러한 경향을 완화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무지한 학습자가 겸손하게 경청하는 자세를 갖는다면, 의심하고 주저하는 학습자도 용기를 내어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두 달을 함께 앉아 배우다 보면, '우리의 만남은 우연이 아니야. 운명이야'하고 문득 깨닫는 순간도 생길 수 있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