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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수샘의 장이불재 Oct 11. 2022

<난중일기>를 제대로 읽기로 했습니다

  요즘 마음이 어지럽고 몸이 무거워서 부질없는 생각에 잠을 설치기도 합니다. 사흘을 쉬고 학교에 와서 아이들과 동료 선생님을 만나니 조금 나아졌지만 혼자 있으면 다시 심사가 뒤틀리기도 합니다. 그래서 학교 안을 다가, 하늘에서 문 문장 하나가 입술 떨어져 저도 모르게 소리 내어 읽어 보았습니다.


  초1일 맑다. 옥문(獄門)을 나왔다.


  며칠 전에 어디선가 접했던 <난중일기>의 한 구절이었습니다. 홀린 듯이 도서관에 들려 <난중일기>를 빌렸고, 교무실에 올라와 읽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떠올린 문장은 1597년 4월 1일, 이순신 장군이 서울 의금부 옥에서 풀려난 날의 일기입니다.



  조국이 이웃 나라에 짓밟히고, 목숨 바쳐 충성한 군왕의 신뢰는 찢겨 날아가고, 자신의 업적도 음흉한 동료에게 빼앗기고, 누명을 쓰고 모진 고문을 당하다 겨우 감옥에서 나온 날의 일기는 이렇게 담담했습니다.


  그러나 백의종군하는 길에 어머니마저 잃어버린 장군은 극한 슬픔에 빠집니다. 낮에는 찾아오는 지인들을 만나 대화를 나누고 저녁에는 원균의 악행을 전해 들으며 분노하다 술에 취하기도 했지만, 홀로 잠들어야 하는 깊은 밤에는 자신 처지를 이렇게 적기도 했습니다.


  1597년 5월 5일

  오늘은 단오인데, 천리 밖 먼 곳으로 어머니 영위를 떠나 종군하고 있어서 예를 못 드리고 곡도 마음대로 못하니 무슨 죄 때문에 이런 앙갚음을 당하는가? 나와 같은 사정은 고금을 통해 찾아보기 힘든 일이니 가슴이 찢어지는 듯 아프다. 다만 때를 못 만난 것을 한탄할 따름이다.


  1597년 5월 6일

  매일같이 꿈자리가 어지러운 것도 아마 형님들의 혼령이 은근히 걱정하여 주시는 것이라 생각하니 슬픔이 한결 더했다. 아침저녁으로 그립고 슬퍼서 눈물이 엉기어 피가 되었는데도 하늘은 어찌 아득하기만 하고 나를 밝혀 주지 않는가? 어찌 빨리 죽지 않는가?


  살면서 도둑이나 강도를 한두 번이라도 만나기 어려운 현대를 살아가는 후손에게 이순신 장군이 직면한 절망은 상상을 초월할 것입니다. 국토와 백성의 목숨을 빼앗으려는 강도, 그리고 자신의 자리를 훔치려는 도둑에 맞서는 그의 기개는 전율입니다. '어찌 빨리 죽지 않는가?' 한탄했던 악몽의 밤이 지나면, 다시 다른 사람이 되어 군사를 살피고 백성을 걱정했기 때문입니다.


  이순신 장군은 가볍게 마이크에 대고 떠들거나, 페이스북에 함부로 올려서는 안 될 이름입니다. '가벼이 움직이지 말라, 태산과 같이 무거이 행동하라'라는 장군의 말씀처럼 조용히 다시 <난중일기>를 읽으며, 이 시대의 도둑과 강도에 맞서야 하는 사람들이 걸어갈 고통스럽고 먼 길을 조금이나마 헤아려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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