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읽다보니 문동은과 주여정 생각이...
요즘 드라마 과몰입 증세가 심한 것 같아, 시를 읽었습니다.
봄이라 봄 시를 찾아서 읽었습니다. 봄에는 짧은 시가 좋습니다. 봄에 어떤 무거운 의미를 얹어 놓은 시보다, 따뜻한 3월의 아름다움을 노래하는 시가 좋습니다.
안도현의 <이른 봄날>이 유독 눈에 들어와서 여러 번 읽었습니다.
- 안도현
이른 봄날, 앞마당에 쌓인 눈이
싸묵싸묵 녹을 때 가리.
나는 꼭 그러쥐었던 손을 풀고
마루 끝으로 내려선 다음,
질척질척한 마당을 건너서 가리.
내 발자국 소리 맨 먼저 알아차리고
서둘러 있는 힘을 다해 가지 끝부터 흔들어보는
한 그루 매화나무한테로 가리.
읽다 보니 생각하다 보니 가벼운 시가 아니었습니다. 읽은 이의 마음에 묵직한 닻을 내리는 시였습니다. 드라마 <더 글로리>가 떠오르는 병이 도졌습니다. '나'와 '매화나무'의 모습에서 문동은과 주여정이 보였습니다.
복수심으로 얼어붙은 마음을 서로 녹여주었던 드라마의 주인공처럼 진정한 봄을 맞이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신중한 용기'가 필요한 것 같아요.
시의 화자가 손바닥 안으로 당겨 쥐었던 손가락을 풀고 눈이 녹고 있는 마당으로 내려섰듯이, 동은과 여정도 '꼭 그러쥐었던 손'을 풀고 서로의 삶 속에 들어가기 위해 용기를 내었습니다. '싸묵싸묵'의 뜻처럼 동은과 여정은 조금씩 흔들리며 몇 년간 천천히 서로에게 나아가서 사랑하는 사이가 되었지요.
꼭 남녀 간의 사랑이 아니더라도, 우리가 타인에게 마음을 열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한 시대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 마당은 일 년 내내 '질척질척'하기 때문입니다. 긴장, 불안, 불확신으로 움츠렸던 마음을 떨쳐내고, 꽁꽁 얼어붙어 미끄럽고 위험한 마당을 건너기 위해서는 그 건너편에 나와 같은 약한 존재가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약하고 상처받은 존재는 서로의 발자국 소리를 금방 알아보기 때문입니다.
어디선가 나를 바라보고 있는 '한 그루 매화나무'가 있다면, 그리로 가기 위해 '서둘러 있는 힘을 다해' 질척질척한 마당으로 내려서고 싶은, 아~ 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