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살면서 나의 가장 큰 관심은 항상 '사람'이었다. 나의 마음, 나의 몸, 나의 모자람과 넘침, 이런 것들을 주제로 공부하고 글도 썼지만 나의 가장 큰 호기심의 대상은 '다른 사람'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살고, 왜 살고, 어떤 꿈을 꾸고 있는지, 그런 것들이 궁금했다. 다른 사람의 삶을 이해하면 '나란 녀석'이 어떤 사람인지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어릴 때부터 TV에 나오는 <주말의 명화>에 빠진 나는 비디오 테이프를 쌓아놓고 영화를 보며 인간의 온갖 얄궂은 운명을 알게 되었고, 노래 가사가 좋은 노래가 좋았다. 영어 공부도 비틀즈의 노래를 혼자 번역해서 옮겨 적어놓고 음미하며 들었다.
10대 시절 학교라는 공간은 너무 답답하고 무섭기도 했지만, '사람 구경'을 하러 간다고 생각하니 견딜만했다. 나를 이유 없이 때린 선생님도 영화의 불쌍한 악역처럼 보였고, 이기적인 1등과 이타적인 꼴등 친구의 운명도 예측이 되니 재미있었다. 등굣길에 만나는 풍경들과 만원 버스, 지하철도 지루하지 않았다. 다른 사람의 삶을 살펴보고, 훔쳐보면서 나 자신을 이해하고 응원하고 때로는 몰래 용서할 수 있었다.
타인을 향한 여행의 종착점은 문학이었다. 시, 소설, 수필을 읽으며 타인을 이해하는 것이 나를 이해하는 길임을 깨달았다. 모의고사를 풀면서 제시문으로 나온 시에 감동해서 눈물이 찔끔 나기도 했다. 내 호흡으로 책장을 넘기고 때로는 책을 덮고 '그들은 왜 그랬을까,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하면서 인생을 배워갔다.
타인을 살펴보고 훔쳐보며, 사람들의 마음과 행동이 더욱 궁금해져서 국어국문학을 전공하고 국어 교사로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타인은 지옥도 아니고 천국도 아니다. 나에게는 타인의 삶은 해방이었다. 약한 자아는 강해지는 방법을 자기가 택해야 스스로 납득할 수 있다. 나에게는 문학, 그리고 문학적인 노래, 영화, 드라마가 공부이자 해방구였다.
요즘 아이들도 저마다 해방구를 찾아 열심히 살고 있다고 믿고 싶다. 유튜브, 축구, 패션, 화장, SNS 뭐든 말이다. 약한 자아는 약한 자아를 알아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