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툰 사이언스'라는 과학 유튜브에서 <인간이 사라진다면 지구에 무슨 일이 벌어질까?>라는 영상이 며칠간 위성처럼 머릿속을 날아다녔다. (의외로 자연과학에도 관심이 많다는 ^^;) 현재의 지구 위의 모든 것은 그대로 있는데, 인간만이 갑자기 사라진다는 상상을 눈앞의 현실로 보여준다.
1일 후부터 50억 년 후의 지구의 모습을 영화처럼 보여주는데, 마지막 장면의 멘트의 여운이 강렬했다. 태양이 지구를 집어삼키고, 인간이 만든 시간이라는 개념 자체가 사라져도 인간의 흔적은 남아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흔적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오래전에 남긴 라디오와 텔레비전 전파는 계속해서 우주를 떠돌아다니고 있습니다. 우리가 울고 웃고 떠들던 소리들, 싸우고 사랑하고 살아가던 장면들이 조각난 전파의 형태로 우주에 남아 있는 것입니다. 그 전파 소리들은 비록 미약하긴 해도 우주가 존재하는 한 영원히 남아있을 것입니다."
내 정신과 육체가 말 그대로 '지구를 떠난다면' 나의 흔적도 사라질 것이다. 멕시코인들의 믿음처럼, 몇 세대가 지나면 다른 사람들에게 완전히 잊혀져서 진정한 죽음을 맞이할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흔적을 남기기 위해 탐욕에 빠진다. 바위와 강철로 구조물을 만들고 자신의 이름을 기록하기 위해 애쓰면서, 타인의 기억 속으로 들어가고 싶어서 타인을 괴롭힌다.
며칠 후 박준 시인의 시집을 읽다가 <숲>이라는 시를 발견했다. 무심코 바라보던 하늘에서 (말도 안 되지만) 갑자기 오로라를 발견한 기분이었다. 그만큼 아찔한 시였다.
오늘은 지고 없는 찔레에 대해 쓰는 것보다 멀리 있는 그 숲에 대해 쓰는 편이 더 좋을 것입니다 고요 대신 말의 소란함으로 적막을 넓혀가고 있다는 그 숲 말입니다 우리가 오래전 나눈 말들은 버려지지 않고 지금도 그 숲의 깊은 곳으로 허정허정 말들이 막 도착했을 것이고요 셋이 함께 장마를 보며 저는 비가 내리는 것이라 했고 그는 비가 날고 있는 것이라 했고 당신은 다만 슬프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오늘은 그 숲에 대해 쓸 것이므로 슬픔에 대해서는 쓰지 않을 것입니다 머지않아 겨울이 오면 그 숲에 '아침에 병듦이 낯설지 않다', '아이들은 손이 자주 베인다'라는 말도 도착했을 것입니다 그 말들은 서로의 머리를 털어줄 것입니다 그러다 겨울의 답서처럼 다시 봄이 오고 '밥'이나 '우리'나 '엄마' 같은 몇 개의 다정한 말들이 숲에 도착할 것입니다 그 먼 발길에 볕과 몇 개의 바람이 섞여 들었을 것이나 여전히 그 숲에는 아무도 없으므로 아무도 외롭지 않을 것입니다
- 박준 시집, <우리가 함께 장마를 볼 수도 있겠습니다>
시인이 보여주었던 숲이 나에게는 우주로 다가왔다. 내가 이 우주에 남길 수 있는 것은 결국 말이다. '미안해, 고마워, 사랑해'라는 흔한 말도 '힘들었어, 두려웠어. 이겨내고 싶어'라는 고백도 '말의 소란함으로 적막을 넓혀가고 있다는 그 숲'에 도착해 있을 것이다.
그 숲은, 먼 미래의 우주와 마찬가지로 '아무도 없으므로 아무도 외롭지 않을 것'이다. 숲이 모여 우주가 되고, 말들이 모여 삶이 되기에, 이 세상에서 내가 사라져도 나의 말들은 숲을 거쳐 우주로 날아가서 영원히 진동할 것이다.
그래서 "유한한 존재인 내가, 어찌 감히 함부로 말들을 쏘아 올릴 수 있을까!"하고 소리 내어 말해본다. 두 번 세 번 계속 말해 본다. 그랬더니 다른 사람들의 목소리가 느껴져서 지금은 외롭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