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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수샘의 장이불재 Jul 01. 2023

그 때의 나는 나를 보고 웃었지만

- 졸업 20년 만에 등굣길 따라 가기

징검다리처럼 빈자리가 놓여 있는 지하철에 앉아 대학에 간다. 교사 연수를 그곳에서 한다는 걸 들었을 때 2시간 거리지만 지하철을 타고 싶었다. 20년 만에 20대의 내가 되고 싶었던 걸까. 


서른 살이 넘을 때까지 나는 같은 자리에 앉아 있었다. 지금처럼 오전 10시쯤이던가. 1교시가 없는 날에는 하품하며 시를 읽었고, 1교시가 있는 날엔 강의실에 잠입할 동선을 짜며 괴로워했다. 시위가 있던 날엔 점점 진해지는 최루탄 냄새에 내리는 것을 주저했고 휴가 나온 날에는 낮술 마실 녀석들이 없을지 걱정했다. 부모님이 남의 밥상을 차려 번 돈으로 후배들의 배를 채워 주러 갔다. 백수를 거쳐 대학원생이 되어 공부하다 고개를 들면 다른 대학에서 내려야 할 때도 있었다. 지하철 밖을 나오면 다른 나로 살아야 했지만 지하철 안에서는 나로 살았다. 모두 오전 10시쯤이었다.


내릴 역의 이름이 신호였을까. 빈자리마다 내가 보였다. 20대의 내가 혼자 앉아 나를 보며 웃고 있다. 중년의 내가 자길 보며 눈물을 훔칠 것을 다 알고 있었다는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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