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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수샘의 장이불재 Jul 25. 2023

학교가 '민원에서 스스로 살아남는 곳'이 안되게 하려면

  교사 연구년의 보고서를 준비하며 읽은 논문 중에 <행복초등학교 밀레니얼 세대 교사에 관한 문화기술지 연구>가 있다. 2021년 2월에 발표한 이 논문에는 '교사, 학생, 학부모가 바라보는 학교'의 모습이 아래와 같이 나와있다.


 행복초등학교를 바라보는 일반 교사들은 ‘일이 없지만, 소통도 없는 학교’, ‘생활지도가 편한 학교’, ‘민원에서 스스로 살아남는 곳’으로 표현하였다.


 행복초등학교 교사들은 내선전화에 '010'이 뜨는 것이 가장 심장이 떨리는 순간이라고 한다. 그만큼 학부모들의 민원전화가 빈번하고 그 내용과 전달 방식에 있어서 상처를 많이 받는다고 하였다. 학부모들과의 소통이 싫어서 교과를 쓰고 싶어 하는 젊은 교사들도 많다. 그러나 관리자들은 학부모들과의 관계에서 교사를 대변해 주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하소연하며 교육 활동을 방어적으로 하게 된다는 생각을 보였다.


 학교의 이름은 가명이지만, 서울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교사들을 인터뷰해서 작성한 논문이라, 최근 서초구 한 초등학교에서 일어난 슬픈 사건이 생각나서 다시 읽어보게 되었다. '민원에서 스스로 살아남지 못한 교사'의 비극을 보여주어서이다.

  초등학교에 '학급, 학년의 벽'이 있다면 중등학교에는 '교과, 부서의 벽'이 높다. 그 벽을 낮추고 허무는 것이 교사들의 소통과 협력인데, 학교 안팎의 여건은 갈수록 교사들의 몸과 마음을 힘들게 만들어서 오히려 벽을 더 높게 만들 위험이 있다.

  초, 중, 고의 많은 학생들이 방과 후에 학원에 가서 선행 학습을 하고 초등학교 대상으로 고액의 의대 진학반이 운영되는 나라에서 정상적인 교육 과정 운영과 생활 지도를 온전히 교사의 몫으로 던져놓고 외부에서 혹독하게 평가만 하려는 세력이 너무 많다. 이런 상황에서 많은 학교는 '방어적'으로 교육활동을 운영한다.

  예전에 나도 운동장에 나가 아이들이 꽃이나 나무, 하늘을 보며 시를 쓰는 야외 수업을 많이 했는데, 지금은 '안전 사고'를 걱정하는 목소리 때문에 시도를 못하거나 교장, 교감, 부장 교사를 직접 만나 설명하고 내부 결재를 받아야 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학급 운영에서도 방과 후 학급 체육행사나 단합대회와 같이 민원의 소지가 있는 활동은 시도하지 못하고 교사의 머릿속에 떠올랐다가 사라진다.

  이런 상황에서는 위의 논문에서 살펴본 행복초등학교처럼 외부 민원으로부터 각자도생하는 학교가 늘어날 수밖에 없다. 학생들의 성적 향상만이 중요한 가치로 요구되는 현실에서 교사가 창의적 교육활동을 해도 관리자의 보호를 기대하기 어렵고, 정신없이 돌아가는 학교 생활로 교사들의 모임 역시 형식적으로 이루어진다면 열정이 많은 교사라도 자신의 교실, 책상으로 움츠려들게 될 것이다.


 그래서 교권을 보장하기 위한 제도 개선과 함께, 모든 학교에는 교사가 수업과 생활지도에 전념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학교 운영 시스템과 교사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여 학교생활의 어려움을 나누면서 서로 협력하는 학교 문화가 필요하다.

  교육부와 교육청 역시 거창한 목표나 화려한 선전물보다, 아이들을 사랑하고 수업에 열정이 많았던 교사들이 절망감에 빠지거나 과거의 자신을 냉소적으로 바라보는 불행한 일을 막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불필요한 민원이 교사에게 직접 전달될수록 교사들의 교육 활동이 위축되고, 그 영향을 학생들이 받게 된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최근에 초등학교 선생님에게 학급 자리 배치에 관한 학부모 민원을 전해 들었다. "떠드는 아이를 내 아이 주변에 배치하지 말아 주세요"라는 말을 듣고, 이러저리 자리표를 만들다가 결국 포기했다고 한다. 이렇듯 민원으로 인해 모둠활동이나 체험 학습이 줄어들면 학생들의 학교 생활이 더 무미건조해질 것이고, 친구 관계도 삭막해지기 쉽다. 그러면 학생과 학생 사이의 갈등이 심해지고 학교폭력도 늘어날 수 있다.


  나도 희망을 잃지 않기 위해, '교사의 소통과 협력'에 관한 논문과 책을 읽고 연수에 참여하면서 나의 교직 경험을 성찰하는 글을 쓰며 남은 연구년을 보내려고 한다. 특히 '전문적 학습공동체'를 제대로 운영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최근에 읽는 <전문적 학습공동체 참여 여부에 따른 교사협력정도, 수업개선활동, 교사효능감, 교직만족도 비교 분석>이라는 논문에서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 하나를 발견했다.


  전문적 학습공동체는 단순히 집단이나 조직의 목표 달성만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교사들과의 협력과 상호작용 또한 강조되기 때문에 이를 통한 사회적 관계의 충만감이 교사의 교직만족도로 연결된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 연구결과는 전문적 학습공동체에 참여하는 교사들이 그렇지 않은 교사들보다 교사협력정도가 교직만족도에 더 큰 영향을 미치는지를 실증적으로 확인하였다는 데 그 의의가 있다고 볼 수 있다.


  전학공의 주제, 이수 시간, 연구 결과도 중요하지만 바쁜 학교생활에서 공동의 관심을 가진 교사들이 일주일에 한두 시간이라도 모여 '쌤, 요즘 학교생활은 어때요?'라고 물어볼 수 있는 그 시간이 정말 소중하다는 생각이 든다. 저경력 교사는 더욱 그렇다. 후배 교사의 고민을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같은 학교 선배 교사와의 소통과 협력이 주는 '정신적인 충만감'의 가치를 다시 한번 공유하는 2023년 2학기가 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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