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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수샘의 장이불재 Aug 12. 2023

'왕의 DNA' 편지와 교사가 공무원직급이 없는 이유

  교육부 5급 사무관이 초등학교 담임 교사에게 보낸 편지(?)를 여러 번 읽어 봤다. 교육 공무원인 교사는 직급이 없지만 호봉 체계로는 7급 정도의 대우를 받는다는데, 그래서였을까? 그는 교육부 메일로 두 등급 아래인 교사에게 공문처럼 지시 사항을 내려보냈다.



  '담임 선생님께'라고 적었지만, 편지가 아니라는 것은 통일되지 않은 서술어를 보면 알 수 있다. 3, 4번은 '~주세요'로 끝나고 5, 6, 7, 9번은 아이의 특성을 설명하는 '~입니다, ~합니다'로 끝난다. 나도 담임을 맡은 해에 학부모님께 편지나 메시지를 받은 적이 꽤 있지만, '아이가 ~한 성격입니다. ~에 관심을 가져 주세요'라는 설명과 부탁이 대부분이었다. 별 아닌 것으로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부모님들도 많았다.

  그런데 5급 사무관님이 보낸 편지인 듯 편지 아닌 글에서 유독 눈에 띄는 것은 '1, 2, 8번'의 서술어이다. '~ '절대'하지 않습니다', '~ 먹지 않게 합니다', '~ 강요하지 않도록 합니다' 이런 어투를 보고 나는 소름이 끼치면서 피부가 서늘해졌다.


  '어디서 들어본 말투였더라?' 생각해 보니... 바로 논산 훈련소에서 빨간 모자를 눌러쓴 조교들이 늘 사용하던 말투였다. 막 입대한 훈련병들에게 훈련소 조교가 어깨에 힘을 팍 주고 목소리 깔고 지시하던 말의 서술어였다. "행군 간에 옆 사람과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총기를 아래로 내리지 않도록 합니다."

  '~해 주세요'라는 부탁의 말투에는 한쪽이 직급이 높더라도, 최소한 상대방을 소통이 가능한 대화의 상대로 인정하고 있는 마음이 들어있다. 그러나 '~ 하지 않습니다'라는 말투는 어떤 반응도 허락할 수 없다는 선언이고 지시와 복종의 관계를 전제하고 있다.


  교육 공무원인 교사에게 직급이 없는 이유는 '아이들' 때문이다. 대통령이 수업 참관을 위해 교실에 들어올 때, 정상적인 대통령이라면 교사에게 묵례하고 뒤로 가서 조용히 지켜볼 것이다. 그때의 교사는 대통령의 저 밑에 있는 공무원이 아니라, 아이들에게는 대통령보다 더 존중받아야 하는 '선생님'이다. 그리고 교실은 민주 공화국의 시민이 될 아이들이 인권과 평등, 민주주의의 가치를 배우고 실현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그것을 잘 알기 때문에 대통령도 아이들 앞에서 교사에게 고개를 숙이는 것이다.

  이번 '왕의 DNA' 편지 사건을 통해 우리 교사에게 직급보다 더 소중한 '교육자의 자존심'이 사회적으로 꼭 지켜지면 좋겠다. 교사들이 아이들에게 '민주 시민의 DNA'를 심어주기 위해서는 학부모의 신뢰가 필요하다. 

  

  나 역시 그동안 좋은 학부모님들을 많이 만났고, 편지를 읽으며 위로받고 용기도 얻었다. 3월 초에 학부모님께 보내는 편지와 함께 학부모 설문지를 아이 편에 보내면, 설문지 아래에 이런 내용을 적어 보내는 분들도 있었다. 이런 편지를 받으면 '더욱 친절한 교사가 되고, 아이들을 더 착하게 만들자'라고 다짐하지 않을까?


  저희 아이가 부족한 점이 많아서 죄송하고, 어려운 시기에 담임을 맡아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아이가 선생님이 매우 친절하고 같은 반 친구들이 모두 착하다고 하네요. 1년 동안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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