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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수샘의 장이불재 Aug 31. 2023

관계가 꼬일 때는 연수보다 설문과 대화를~

이번 주 토요일에 미래교육 관련 현장 연수를 신청해 놓았고, 얼마 전 'ChatGPT 활용 수업' 오픈채팅방 소개 글을 보자 부리나케 들어간 나는 어쩔 수 없는 '한국인 특'의 소유자인 것 같다. 나 역시 빨리빨리, 효율적으로, 남들보다 먼저 새로운 교육방법, 수업도구를 익히기 위해 조바심을 낸다.

평소 컴퓨터를 좋아했던 나는 코로나로 인해 온라인 수업이 시작되자 에듀테크 활용 수업이라는 새로운 바다에 싱싱한 한 마리 고등어처럼 파닥거리며 뛰어들었다. 공문을 뒤져서 연수를 듣고 정보부장님을 귀찮게 하며 IT 기기도 준비했고, 유튜브 등에서 메타버스, IB 교육 관련 영상을 보며 정체를 파악했다.

그 결과 블렌디드 수업 사례로 외부 강의를 하고 관련 책을 출판할 뻔 했지만, 스스로 느끼는 수업 만족도는 예전보다 높지 않았다. 온라인 수업에 반응이 좋았던 퀴즈 프로그램이나 구글문서, 패들렛 등의 디지털 도구들을 교실 수업에서도 붙들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책과 칠판만 있어도 대화와 질문, 감탄사가 흘러나오던 그 교실은 어디로 갔을까? 잔잔한 호수에서 물 아래와 위를 다 눈에 담으며 헤엄칠 때가 좋았다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올해 교사 연구년을 하며 읽은 책들의 키워드는 '갈등, 대화, 소통, 협력'이고, 연구년 워크숍이나 공동연구 분임 선생님들과 퍼실리테이션, 자기 경영법 강의에 참여하며 아날로그적 만남의 즐거움과 보람을 체험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새삼 깨달은 것이 있다면, '우리는 답을 찾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대화는 계속하자'는 것이다. 영화 <인터스텔라>의 명대사인 '우리는 답을 찾을 것이다. 그랬듯이'라는 말은 고이 접어 두기로 했다.



대신 '온고지신'이라는 꼰대 같은 단어가 사랑(?)스럽다. 수업이 잘 안될 때를 돌아보면 교사와 학생, 학생과 학생 사이의 관계가 얼어붙어서 그런 경우가 많았다. 동료 교사와의 관계도 마찬가지이다. 학교 일을 하다 갈등이 생겼던 선생님은, 대부분 미리 찾아가서 어려움을 듣거나 의견을 묻지 않았던 분들이었다. 또 영어에서 '스몰 토크'라고 하는 가벼운 인사와 근황에 대한 질문을 거의 나누지 않았던 분들이었다.



우리가 익혀야 하는 '옛것'은 수업이나 일을 하기 전에 먼저 서로의 관계를 충분히 데워야 한다는 지혜이다. 이순신 장군은 명나라 장수에게 귀한 차를 대접하며 신뢰를 쌓았고, 정약용을 비롯한 선비들은 유배지에서도 벗들과 차를 마시며 서로의 생활을 챙기고 나서야 학문을 교류했다. 핀란드는 모든 직장에서 하루 두 번 10분씩의 '커피 브레이크 타임'을 갖도록 무려 법으로 정해 놓았다고 한다. 이것도 행복 1위 나라의 비법 중의 하나이다.


여기에 기록한 글에도 '설문지'에 관한 꽤 많은 내용이 있다. 다른 선생님들과 양식을 공유해서 한 학기에 한두 번씩 아이들에게 설문지를 받았고, 이것을 보면서 대화가 필요한 학생을 정하고, 수업 시간에 계속 자거나 방해하면 다시 설문지를 꺼내서 개인 면담을 하기도 했다. 심각한 상황이면 점심시간이나 방과 후에 불러 음료수를 마시면서 '요즘 힘든 일이 있니?'하고 물어보곤 했다.

설문을 종이로 받는, 디지털 도구를 이용해서 받든 무엇이 잘 안될 때는 아이들과 '설문 브레이크'를 가지면 좋겠다. 또 설문 브레이크는 여러 번의 대화 시간를 만든다. 아이들이 무엇을 모르고 어려워하는지, 서로의 관계는 어떤지, 요즘 어떤 것에 흥미가 있는지 등을 아는 것이, 백 시간 동안 연수를 듣는 것보다 더욱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닐까? 나와 아이를 이해하고, 그다음에 꼭 필요한 연수를 신청해서 배우면 더욱 의미가 있을 것이다.


최근에 참가한 미래 교육 연수에서 만난 강사분들도 '소통과 협력을 위한 도구'로서 새로운 교육 프로그램과 수업 방법을 활용하고 있었다. 이렇게 대한민국 교사들은 늘 배우고 실천하고 성찰하고 다시 배우는 사람들이다. 그러니 눈부신 경제 성장이 외국 문물을 빨리빨리 받아들여서 잘 활용한 결과라고 믿고, 학교 교육도 그래야 한다고 닦달하는 목소리가 사라지길 바란다. 알아서 잘해 왔고 잘할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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