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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소리가 되어 있는 않은 아이들의 말에 귀 기울이기

- 교사의 4월 이야기 (3)

by 글쓰는 민수샘

세월호 참사 5주기였던 지난 4월 16일, 2학년 문학 시간에 추모수업을 했습니다. 진도와 분위기를 고려해서 '세월호 추모 영상 보기와 마음 나누기'를 약간씩 조정해서 진행했지요. 그 중에서 수업종이 울려도 엎드려 있는 아이들이 가장 많은 학급은 충동적으로(?) 야외수업까지 하게 되었어요.

<세월호 1000일, 단원고 생존자 학생들 첫 심경 고백>, <‘하늘에서 받는 졸업장’ 학생들의 졸업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두 영상을 먼저 보고, 포스트잇에 하고 싶은 말을 적어서 학교 1층의 '작은 소녀상' 뒤쪽 벽에 붙이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20분 정도 시간이 남아서, 남학생들에게는 빌려놓은 축구공을 던져주었고 여학생들은 봄햇살을 쬐며 하늘 구경, 꽃 구경도 하라고 말해주었답니다. (막상 운동장에 나가서 제가 아이들 옆에 다가가서 말을 거니, 대꾸도 잘 하고 질문도 하고 그러더군요. 수업 시간에 얼굴을 보기 힘든 아이들에게 이름을 부르며 농담을 던지니 같이 웃어주고요. 교실에서도 이런 모습을 많이 보고 싶습니다.ㅎㅎ)

교실에서도 영상을 처음 틀 때 10명 정도가 엎드려 있었는데, 불을 끄고 있었지만 한 두 명씩 일어나서 영상을 보는 모습에 감동했습니다. 그리고 두 세명 빼고는 모두 자신의 마음을 적어서 벽에 붙어주었네요. 어쩌면 누군가에게 전달되지 않는 의미 없는 편지일 수 있는데, 시험에 출제되는 것도 아닌데, 왜 아이들은 이렇게 애틋한 마음을 또박또박 적어주었을까요? 평소 수업시간에는 잠을 깨워 볼펜을 쥐어주고, 모둠활동에 참여하라고 책상을 돌려주고 해도 다시 엎드리는 아이들도 많았는데, 무엇이 아이들을 움직이게 만들었을까요?


어제 저녁에는 학교의 '배움의공동체 공부모임' 선생님들과 사토 마나부 교수님의 <수업이 바뀌면 학교가 바뀐다>를 읽고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그 중에서 저는 아래 구절이 새삼 가슴에 와닿습니다.


"배움을 풍요롭게 촉진할 수 있는 교사는 집단을 상대로 이야기할 때에도 한 사람 한 사람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는 것과 같으며 모두에게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교실에 있는 것은 아이들 한명 한명이지 모두로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이야기하면서 그 이야기가 한창 진행 중인 과정에서도 한명 한명의 아직 소리가 되어 있지 않은 말에 귀를 기울이며 아이들의 신체의 이미지나 너울거리는 정서의 물결과 함께 공진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러한 신체와 말을 갖춘 교사의 교실에서 배우는 아이들은 행복한 것이다." - 53쪽


교무실에서 교사들은 "그 반은 참 듣는 자세가 안 돼 있어", "그 반은 호기심도 없고 무기력해"와 같은 말을 자주 합니다 그런데 뒤집어 생각해보면 오히려 교사들이 아이들의 '아직 소리가 되어 있는 신체의 말과 정서의 숨결'을 제대로 들으려 하지 않고 느끼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왜 제대로 말하지 못하니, 너희는 생각이 없니'라는 말을 마음 속으로도 품지 않도록 노력하고 싶습니다.

4월 16일, 아이들과 함께 한 특별한 수업이 이런 성찰을 선물해 해주었습니다. 세월호와 함께 떠난 그 아이들처럼 제가 만나는 아이들도 하고 싶은 이야기도 많고 웃음과 눈물도 많은 나이, 18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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