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문학의 향기가 진하게 나는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

by 글쓰는 민수샘

어제 오늘,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을 8화까지 몰아서 봤어요. 방금까지 본 8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저도 가슴이 울렁울렁해지고 막 아프고 머리가 띵하고 눈물이 날 뻔했어요. ㅠ. ㅠ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의 임상춘 작가님은 30대 초반의 여성이라고 하네요. 이름도 필명이고 신비주의까진 아니지만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다고 합니다. '생활의 달인' 같은 프로그램을 정말 좋아하고, 하고 싶은 이야기가 너무 많아서 20대 후반에 드라마를 쓰기 시작했다는 인터뷰가 인상적이었어요. 분명 좋은 국어샘을 만난 것이 틀림 없습니다.ㅎㅎ

8화 마지막 장면에서 동백이는 가장 비참하고 운도 안 좋았던 하루를 보내고 소주를 마십니다. 그녀 앞에서 똥개보다 귀여운 촌놈 용식이는 오늘도 생각나는 대로 멘트를 던지지요.


용식 : 까놓고 얘기해서 동백씨 억세게 운 좋은거 아니여요?

동백 : 훗 … 운이 참도 좋네요.

용식 : 고아에 미혼모가 필구를 저렇게 잘 키우고 자영업 사장님까지 됐어요. 남탓 안 하고 더 착실하게 그렇게 살아내는 거 고게 다들 우러러 보고 박수 쳐줘야 될 거 아니냐고요.

동백 : (태어나서 처음으로 칭찬을 받았다.)


%EB%8F%99%EB%B0%B1%EA%BD%83_%ED%95%84_%EB%AC%B4%EB%A0%B5_7-8%ED%9A%8C_%ED%95%A9%EB%B3%B8.E04.190926.720p-NEXT.mp4_20191020_112422.782.jpg


%EB%8F%99%EB%B0%B1%EA%BD%83_%ED%95%84_%EB%AC%B4%EB%A0%B5_7-8%ED%9A%8C_%ED%95%A9%EB%B3%B8.E04.190926.720p-NEXT.mp4_20191020_112516.365.jpg


용식 : 남들 같으면요 진작에 나자빠졌어요. 근데 누가 욕해요? 동백씨, 이 동네에서요, 제일로 세고요, 제일로 강하고, 제일로 훌륭하고 제일로 장해요.

동백 : … 그냥 나 자꾸 편들어주지마요. 칭찬도 하지 마요. 그냥. 왜 자꾸 이쁘데요, 왜 자꾸 나 보고 자랑이래. 나는 그런 말들 다 너무 처음이라, 막 마음이 울렁울렁, 울렁울렁 … …


%EB%8F%99%EB%B0%B1%EA%BD%83_%ED%95%84_%EB%AC%B4%EB%A0%B5_7-8%ED%9A%8C_%ED%95%A9%EB%B3%B8.E04.190926.720p-NEXT.mp4_20191020_111613.892.jpg


%EB%8F%99%EB%B0%B1%EA%BD%83_%ED%95%84_%EB%AC%B4%EB%A0%B5_7-8%ED%9A%8C_%ED%95%A9%EB%B3%B8.E04.190926.720p-NEXT.mp4_20191020_111543.413.jpg


이 장면만 봐도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은 최고의 문학 작품입니다. (현직 국어샘도 인정했어요.) 21세기에 태어난 아이들이, 특히 남자 아이들이 많이들 봤으면 좋겠어요. 또 이 장면이라도 보여주고 싶고요. 사람이 사람에게 지옥이 될 수도 있지만, 가장 깊은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에게 다른 사람이 기적이 될 수도 있으니까요.

자기 마음을 마음대로 다른 사람에게 가게 하고 또 가지 못하게 막고 그러지 못하는게 사람이라, 우리는 문학을 통해 진짜 나를 알게 되고 타인을 이해하게 됩니다. 노랫말과 영화 시나리오, 드라마 대본 속에서도 문학이 살고 있지요. 좋은 문학이 자라나서 꽃을 피운 드라마나 영화도 그 자체로 좋은 문학 작품인 것 같아요.

제가 만나는 아이들 중에도 '동백이'보다는 낫겠지만, 힘든 10대를 보내고 있는 기적 같은 아이들이 많이 있습니다. 졸업장을 목표로 수업 시간에는 잠만 자고 가끔은 교칙을 어겨서 혼나기도 하지만 기회가 있으면 이렇게 말해주고 싶어졌습니다. 상처가 많은 사람일수록 웬만해선 진심을 드러내지 않고 쉽게 변하지 않지만, 막 칭찬을 들이대고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존재로서 나를 인정해주면 가슴이 울렁울렁대면서 마음 속에 담벼락이 흔들리지 않을까요?


"그래도 너는 대단하고 강하다고 생각해. 크게 나쁜 짓 안 하고 고등학교까지 왔잖아. 지각은 했지만 학교에 왔고. (그 다음은 드라마에서 배운 대로^^) 그렇게 해왔다는거 다른 사람들이 박수쳐줘야 한다고 쌤은 생각해."


keyword
작가의 이전글아직 소리가 되어 있는 않은 아이들의 말에 귀 기울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