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광주 첨단중 강의 후기
얼마전 끝난 TVN 드라마 아스달연대기를 재미있게 봤습니다. (명색이 국어샘인데 집에서 책보다 TV를 훨씬 더 많이 보네요. ㅋㅋ) 송중기가 연기한 주인공 은섬은 같은 씨족끼리 대립하던 아고족을 통합하고 전설의 지도자 '이나이신기'의 재림으로 인정받게 되는데, 그 과정이 정말 흥미로웠어요. 아고족 30개의 씨족은 서로를 잡아와 다른 부족에게 노예로 팔면서 원수로 지냈는데, 이 악순환을 끝낸 것은 은섬의 순진한 말 한 마디에서 시작되었지요.
"아고족의 한 씨족이 먼저 노예로 팔려간 아고족의 다른 씨족을 구출해서 아무 조건 없이 돌려보내면 됩니다. 그럼 그 씨족도 다른 씨족을 구출해서 돌려보낼 것이고, 그럼 서로를 노예로 잡아 파는 일을 멈출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모두 비웃고 의심했지만, 은섬은 아고족 묘씨를 이끌고 다른 씨족을 구출해서 고향으로 돌려보내면서 그들의 마음을 얻었고 그렇게 선순환이 시작되었습니다.
10월 2일 오후, 광주광역시 첨단중학교에서 제가 한 수업 영상으로 연수를 진행하면서, 갑자기 아스달연대기가 떠올랐어요. 선생님들이 사이 좋게 모여앉아 수업에서 배운 점과 고민을 나누는 평화로운 모습을 보면서 이런 선순환이 어디에서 시작되었나, 생각하게 된 것이지요.
그 시작에는 역시 사토 마나부 교수님이 있었습니다. 도쿄대의 편한 강의실과 연구실을 나와서 각지의 학교, 그것도 일본에서 가장 아이들이 사납고 교사들의 냉소주의가 심한 학교의 수업을 참관하면서 아스달연대기에서 은섬이가 그랬듯이, 학교의 현실을 모르는 순진한(?) 말씀을 시작하십니다.
"남의 일에 간섭하지 않는 대신에 자신의 일에 대해서도 간섭받는 것이 싫다는 '상호불간섭'이라는 암묵의 규칙이 학교를 지배하고 있다. … 수업을 공개하는 일에 저항을 느끼는 대부분의 교사는 과거에 수업을 공개하여 불쾌하고 힘든 경험을 한 교사들이다. … 수업의 '좋고 나쁨'을 의논하기 때문에 서로 간에 상처를 받는 것이다. 수업연수의 목적은 그러한 것이 아니라 수업에서의 어려웠던 점과 재미있었던 점을 함께 공유하는데 있다." - '수업이 바뀌면 학교가 바뀐다' 중에서
이러한 사토 교수님의 말을 처음 듣는 선생님들은, 은섬이의 주장을 처음 들은 아고족의 묘씨들이 그랬듯이 '그게 되겠어! 현실을 너무 모르네'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토 교수님의 그 말은 사실은 모든 교사가 꿈꾸던 학교의 모습이었고, 모두가 바라던 진정한 동료 관계였습니다.
드디어 한 명의 교사가 용기를 내어 다른 교사들에게 일상의 수업을 공개했고 자신의 수업 철학과 솔직한 고민을 털어놓았습니다. 다른 선생님들도 아이들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관찰하며 서로 배운 것을 나누었고 수업을 열어준 것에 대해 감사를 표했습니다. 그렇게 배움의공동체의 전설이 시작되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저는 전쟁을 멈추고 아고족을 통합하여 평화를 가져다준 은섬이와 교과, 학년, 학교급별로 나누어져 서로 관심 없던 교사문화를 바꾸고 아이들에게 진정한 배움의 즐거움을 선물해준 사토 마나부 교수님 사이의 평행이론을 발견했습니다. ^^
저를 두 번이나 초대해준 첨단중학교 선생님들 덕분에 저도 이런 배움을 얻었을 수 있었어요. 태풍을 뚫고 달려간 보람이 있었습니다. 첨단중학교 선생님 한 분 한 분이 은섬이가 되고, 사토 마나부가 되어서 교실을 더 평화롭게, 수업을 더 수준 높게 만드는 순진한 꿈을 다시 꾸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