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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수샘의 장이불재 Sep 13. 2023

<월요일도 행복한 핀란드 직장생활>을 읽다가 발견한 꽃

- 스노우드롭(설강화) 이야기

  

  교사 연구년 2학기가 되어 더 열심히 살아야 하지만, 마음 편하게 일에 집중하기 어려운 요즘이다. 그래서 무기력함을 떨쳐내기 위해 <월요일도 행복한 핀란드 직장생활>을 작정하고 읽기 시작했다.


  핀란드에서 7년간 살며 교육학 석사 학위를 취득하고 직장 생활까지 경험한 저자의 이야기는 흥미롭고 구체적이었지만 책장을 넘기는 손가락에 힘이 실리지 않았다. 마치 정답지를 펴놓고 수학 문제를 푸는 심정이랄까, 이 책을 다 읽는다고 해도 다른 이에게 자신 있게 소감을 말할 수가 없을 것 같았다. 가령 이런 구절은 100% 동의하지만, 역시 핀란드는 지구가 아니라 환상과 동화의 나라에 있는 느낌이 들었다.


  "어린 시절부터 평평한 운동장을 경험한 핀란드 아이들은 공존을 위한 다양성 존중이 중요하다고 배우고, 부와 명예를 누리는 사람들이 기꺼이 세금과 벌금을 더 내는 모습을 지켜보며 자랍니다. 이런 핀란드 아이들이 성인이 되어 일하는 핀란드 기업에서 공정한 문화가 상식인 건 지극히 당연합니다. 공정한 문화가 상식으로 자리 잡은 핀란드에선 가정에서도, 학교에서도, 기업에서도, 사회에서도 모든 구성원이 중요합니다."


  이 내용에 내 의견을 덧붙여 글을 쓰려고 해도, 자기검열(?)처럼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라는 질문이 생각나 머리가 아팠다. 더 민주적이고 공정한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해서 '교육 개혁이 먼저냐, 사회 개혁이 먼저냐'라는 식상한 논제에 갇히는 기분이었다. '교육 개혁, 사회 개혁을 동시에 추진해야 한다'라고 말하고 싶어도 '그럼, 그것을 누가 어떻게 하나요? 당신이?'라고 누군가 따질 것 같았다.


  '일개 교사인 내가 왜 이런 고민을 하고 있나'하는 생각에 조금 허탈해졌지만, 희망의 끈을 놓고 싶지 않아 다시 책을 들었다. 그러다가 책 중간에 있는 그림 하나가 마음을 사로잡았다. '경쟁의 시대에 상호보완의 가치를 실현한 핀란드 조직 문화'를 설명하는 부분에서 그림를 통해 핀란드의 국민정신을 소개한 부분이었다.


  한 줌의 꽃을 손에 든 채 눈을 가리고 앉아 있는 천사와 이런 천사를 어딘가로 옮기고 있는 두 소년을 그린 커다란 벽화의 이름은 '상처 입은 천사(The Wounded Angel)'이다. 휴고 심베리(Hugo Simberg)가 그린 이 그림은 2006년 핀란드 국립 미술관이 주최한 투표에서 핀란드를 대표하는 그림으로 선정되었다고 한다.



  이 그림에서 강한 인상을 받은 이유는 추락한 천사의 모습이 현재 고통받고 있는 우리나라 선생님들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천사를 앞뒤에서 받치고 걸어가는 두 소년은 '초경쟁 사회'에서 절망하고 있는 우리의 아이들 같았다. '누가 우리 선생님을 이렇게 만들었나요? 누가 우리의 행복을 뺏어갔나요?'라고 조용히 소리치고 있는 눈빛이었다.


  하지만 이 그림이 핀란드를 대표하게 만든 것은 바로 천사가 움켜쥐고 있는 작고 가냘픈 흰색 꽃인 스노우드롭(snowdrop)'이다. 이 꽃은 설강화로도 불리는데, 꽃이 눈 위에 내려앉은 모습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고 늦겨울과 초봄에 피어난다. 저자의 설명을 더 인용해 본다.


  "핀란드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이 담긴 'The Wounded Angel'은 오랜 전쟁의 역사를 통해 겪은 고통과 슬픔을 표현하는 동시에, 천사의 손에 들린 스노우드롭으로 회복과 치유, 희망과 위안의 메시지를 전합니다. 일반적으로 천사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는 이미지로 인식되지만, 휴고의 대표작 속 상처 입은 천사는 연약한 소년들의 도움에 의지해야만 하는 존재입니다. 우리는 누구도 - 심지어 천사조차도 완전할 수 없기에 사회적 합의와 규정과 지원이 필요합니다. 동시에 우리는 비록 작고 미약해 보이는 개인일지라도 힘을 모아 맞들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도 있죠. 이것이 Finns가 개인과 공동체, 그리고 그 공동체에 속한 각자의 역할을 바라보는 시선이란 생각이 듭니다."


  우리나라와 비슷한 식민지 지배와 내전의 역사를 가진 핀란드는 상처받은 사람들이 다시 서로에게 상처를 주지 않은 길을 선택했다. 느리지만 화해하고 타협하면서 공존하는 사회 제도와 문화를 만들었다. 600년 동안 스웨덴과 러시아의 식민 지배를 받고 20세기 초반 내전으로 36,000명이 사망한 핀란드는 국민 통합을 위해 무엇보다 아이들을 제대로 기르기 위해 힘썼다.

 

  우리도 같은 학교의 교사들이, 그리고 같은 학급의 학생들이 서로의 상처를 제대로 들여다보고 공감하면서 '우리가 서로를 의지할 수밖에 없는 약한 존재'라는 것을 인식하는 시간을 가지면 좋겠다. 그리고 교사와 학생이 진솔하게 서로의 힘든 점에 관해 대화를 나누고 격려하는 시간도 학교 실정에 맞게 지혜를 모으면 가능할 것 같다.


  더 늦기 전에, 우리가 놓지 말아야 할 것은 시들어 가는 스노우드롭 한 송이가 아닐까? 스노우드롭의 꽃말은 '깊은 애정, 위로, 희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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