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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수샘의 장이불재 Nov 05. 2023

말빚, 수업 빚, 배움의 빚

- 2023 '경기 배움의공동체연구회 수업세미나' 후기

  '말로 남에게 진 빚'을 말빚이라고 한다. 허튼 말로 말빚을 지는 일이 없도록 조심하고 있지만, '수업 빚' 자꾸 쌓여가니 큰일이다. 11월 4일 토요일, 구리시 인창고에서 열린 경기 배움의공동체연구나 수업세미나에서도 꼭 갚아야 할 수업 빚을 지고 왔다.




  올해 교사 연구년을 하면서, 배움의공동체연구회에서는 안식년을 갖고 있다. 작년까지 10년 동안 전국 운영위원과 경기연구회 운영진으로 일했는데, 동료 선생님들의 배려로 좀 더 몸과 마음을 돌는 한 해를 보낼 수 있었다. 이것도 마음의 빚이라서, 수업세미나라는 큰 행사를 준비한 선생님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꼭 전하고 싶었다.

  그리고 한국 배움의공동체연구회 대표이신 손우정 교수님께 오랜만에 인사드리고, 기조 강연을 들으니 정말 좋았다. 특히  최근의 교실 컴퓨터 이용에 관한 조사를 인용한 부분이 인상 깊었다. 태블릿 등 IT 기기를 '교사 혼자, 교사와 학생 함께, 학생 각자' 사용하는 것을 비교하면 효과가 있는 것은 '교사 혼자'이고, 가장 대미지가 큰 것이 '학생 각자'라고 한다. 수준 높은 배움을 촉진하는 대화와 질문이 일어나지 않은 환경이 원인인 것 같다.

  때로는  IT 기기 없이 교사와 학생, 학생과 학생이 더 많이 고류하는 수업이 가장 학력을 높일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도 해보았다. 그리고  '디지털 교과서가 교사가 교육과정을 재구성해서 만든 활동지보다 효과적일까?', 'AI 튜터가 친구들과 협력해서 배우는 활동보다 학습동기를 자극할 수 있을까?'라는 말씀도 곱씹을 것이 많은 질문이었다.

  자료집에 정리되어 있는 '배움의공동체 철학의 말들'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시류에 휩쓸려서 겉으로만 화려한 수업을 하지 않기 위해 흔들리지 않는 중심을 잡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기조 강연을 마치고 교실로 흩어져서 분과별 수업 임상 연구를 했고, 오후에는 다시 한곳에 모여 대표수업 임상 연구를 했다. 운영진이 정성껏 준비한 친환경 도시락과 따뜻한 국은 감동이었다. 교육청이나 연수원에서 준비한 무료 연수도 인원을 채우기 어렵다고 하는데, 학기중 토요일에 각자 회비를 내고 수업세미나에 참여한 선생님들과 함께 먹으니 더 꿀맛이었다. ^^



  오전에는 중학교 3학년 사회과 수업을 보고 배운 점을 나눴는데, '헌법에서 노동삼권을 보장하는 이유는 무엇인가'라는 멋진 주제의 수업이었다. 오후의 대표수업 사례연구는 고1 국어과 수업으로,  '<허생전>과 <허생의 처>로 읽는 사회와 젠더'가 주제였다. 고전 소설과 그것을 패러디한 현대 소설 두 작품의 전문을 각각 읽은 후에 인물, 갈등, 주제, 표현 방식 등을 비교하며 토의하는 모둠활동을 영상으로 보면서 여러 번 감탄사가 나왔다.




  대표수업을 공개한 분은 작년까지 4년 동안 공모 교장으로 근무하다, 올해 다시 평교사로 돌아온 선생님이라 더  큰 감동을 주었다. 수업 컨설팅에서 손우정 교수님이 말씀하셨듯이, 고등학교에서도 충분히 수준 높은 협력 수업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 교사의 도전이었다. 책상에는 교과서, 태블릿, 음료수 등이 놓여 있었지만, 아이들은 이런 것에 눈길을 주지 않고 옆에 있는 친구의 눈을 보며 차분하게 대화를 나눴다. 아는 것을 먼저 말하기보다 친구의 말을 먼저 들었고, 친구의 발표를 이어서 설명하며 협력했다.

  이것이 가능했던 이유 중의 하나는 '교장 출신 교사'의 겸허하고 섬세한 배움의 자세이다. 아이들을 위해 교과서 밖의 소설을 찾아 새롭게 수업을 디자인했고, 동료 선생님과 함께 8차시의 활동으로 구성했다. 모둠활동을 하는 아이들의  의미 있는 모든 이야기를 듣기 위해 노력했고, 조심스럽게 발표를 부탁하고 고마운 마음을 표현했다.


  이렇게 나의 수업 빚이 더 늘어난 하루가 지나갔다. 함께 수업을 본 선생님들에게 '저도 앞으로 이런 점들을 배워서 실천하고 싶습니다.'라고 말한 나의 말빚도 늘었다. 이런 배움의 빚을 갚는 길은 내년에 학교로 돌아가서 동료들과 함께 좋은 수업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부족하지만 계속 수업을 공개하는 것밖에 없을 것이다.

  학교에서 'Super shy, 대문자 I' 성격의 교사였던 내가, '그냥 shy, 소문자 i'로 바뀌어 수업 영상을 촬영하고 수업 사례를 발표할 기회를 얻게 된 것도 배움의공동체연구회에서 만난 교수님과 선생님들 덕분이다. 그래서 앞으로도 조용히, 은밀하게 '배움의 빚잔치'를 계속 벌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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