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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수샘의 장이불재 Nov 09. 2023

『나 홀로 볼링』을 읽고 '나 홀로 수업'을 생각하다

- 학교 안에서 사회적 자본 만들기


  하버드대 교수인 로버트 퍼트넘의 『나 홀로 볼링』에 관한 이야기를 유튜브 채널 매불쇼에서 듣고 관심이 생겨서 관련 내용을 더 찾아 읽게 되었다. 책 제목처럼 1960년대 후반 이후 미국에서는 볼링마저도 혼자 치는 사람이 등장했다고 한다. 이 현상이 상징하는 것은 '사람들 사이의 협력을 만드는 제도, 규범, 네트워크, 신뢰 등 모든 것'을 뜻하는 사회적 자본의 감소이다.  

  '나 홀로 볼링(Bowling Alone)'을 즐기는(?) 사람의 이미지를 떠올리자, 학교에서 동료들과 수업 고민을 나누지 않고 수업 참관도 하지 않으면서 '나 홀로 수업'을 하고 있는 교사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  만약 학교에서 '나 홀로 수업'을 고집하고 퇴근 후에 '나 홀로 볼링'을 치는 교사가 한두 명씩 계속 늘어난다면 어떤 문제가 생기게 될까?



  다시 미국 이야기로 돌아가 보면, 20세기 후반으로 갈수록 취미 모임, 봉사 모임, 학부모 모임 등 지역 커뮤니티에 참여자가 줄어들게 되면서 개인과 기관 간의 신뢰가 떨어지고 협력도 감수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 결과 범죄는 늘고 시민 사회의 역동성은 줄어들었다.

  이 시기 미국 경제는 계속 발전해서 인적·물적 자본은 쌓여갔지만, 미국 사회나 조직 내의 사회적 자본은 거꾸로 감소하여 구성원 간의 불신으로 인해 불필요한 시간과 비용이 늘어났다고 한다. 즉 미국은 개인과 개인의 대화와 타협, 양보와 용서가 사라진 '소송의 나라'로 굳어진 것이다.

  그 원인으로는 장거리 출퇴근으로 인한 자유 시간의 부족, 잦은 이사와 도시의 팽창, 맞벌이 부부의 증가, TV 시청 시간의 급증을 들었다. 그리고 권위, 종교, 애국심에 반감을 갖는 새로운 세대의 등장도 큰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이러한 현상과 원인을 현재 우리나라의 학교에 적용해 보면,  20세기 말 미국 사회의 모습과 유사한 점이 많다. 미국과 마찬가지로 현재 우리나라의 학교도 '물적 풍요, 관계의 빈곤'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특히 고등학교가 그렇다.

 『나 홀로 볼링』에서는 경제 성장이나 물질적 복지가 근본적으로 공동체를 소생시켜주면서 인간을 자유롭고 행복하게 만들어주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당장 몇 가지 제도를 고치고, 물적·인적 자원을 학교에 투입해도 아동 학대와 학교 폭력 신고로 인해 교사들이 겪는 고초가 근본적으로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학교 폭력을 줄이기 위해 미국처럼 스쿨 폴리스를 교내에 상주시켜야 한다는 황당한 주장도 계속될 것이다.


   학교를 바라보는 교육 당국의 인식은 여전히 암울하고 입시 제도는 더 심한 경쟁을 부추기고 있지만, 학교 안에서라도 사회적 자본을 풍부하게 만들기 위해 우리 교사들이 더 노력하면 좋겠다. 무엇보다 '나 홀로 수업'을 '함께 만드는 수업'으로 바꾸는 것이 필요하다. 아이들 사이의 갈등과 대립이 일어나는 곳도 교실이고, 아이들이  서로 인정하고 협력하며 성장하는 곳도 교실이다. 교실 속 문화는 수업을 통해서만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다.

  퍼트넘 역시 시민 사회를 긍정적 변화시키기 위해 '풀뿌리 네트워크'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시민 단체에 관한 연구를 통해, 대의명분에 대한 공감이나 책임감을 기반으로 가입한 회원이 많은 단체보다 친구나 지인의 소개로 가입한 회원이 많은 단체가 더 활발하게 활동하고 회원 수의 변동도 적다는 점을 발견했다. 또한 같은 종교, 인종, 민족 구성원을 가진 조직보다 이질적인 구성원을 가진 조직이 더 긍정적인 사회적 효과를 발휘한다고 주장했다.



  학교의 경우도 교육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같은 학교 교사로서의 결속감과 동질감을 강조하면 오히려 '나 홀로 수업'하는 교사가 늘어날 수 있다. 반대로 각자의 교육관을 존중하는 분위기 속에서 같은 교과와 학년, 전문적 학습공동체, 교사 동아리와 같은 풀뿌리 단위에서 일상적으로 교류하고 협력하는 경험을 쌓아가는 학교가 학생, 교사, 학부모 모두의 만족도를 높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풀뿌리 네트워크가 살아있는 학교는 수업 공개와 연구회도 내실 있게 진행할 것이다. 교사들의 수평적 관계 맺기에 기반한 호혜적인 교사 문화는 수업에 대한 무거운 책임감을 나눠 가질 수 있게 한다. '나 홀로 수업'하는 교사는 자신의 수업에 대해 100%의 책임감을 가질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당장 성공할 수 있는 수업 기법에 의존하고 수업에 실패할 경우 좌절하기 쉽다. 이렇게 고립된 교사 한 명에게 소비자 마인드를 지닌 학생이나 학부모가 민원을 제기한다면 어떻게 될까? 학교에서 지원받을 수 있는 사회적 자본이 없어서 더욱 깊은 수렁으로 빠질 수 있다.  


  그러나 자신의 수업을 부담 없이 공개하고 동료의 수업을 적극적으로 참관하며 배우는 교사는 50% 정도의 책임감만 느끼면 된다. 나머지 50%는 동료 교사와 학생들이 채워줄 수 있다. 역동적인 수업 연구를 통해 다수의 교사가 '함께 만드는 수업'을 운영하면, 교사에 대한 학생의 신뢰가 높아지고 학생들의 관계도 부드러워져서 모둠활동이 잘될 것이고 교사가 개입해야 하는 문제 행동도 줄어들 것이다.

  동료 교사와 연대하고 학생과 소통하면서 서로 의존할 수 있는 사회적 자본이 많은 교사는 오늘 하루의 수업에서 최선을 다해 내 몫의 역할을 다하면 되기 때문에 부담감을 적게 느낀다. 설령 오늘 어떤 학급의 수업이 실패해도 다른 교사를 믿고 내일을 기약하며 교실을 힘차게 나설 수 있다. 또한 교사 한 명이 아무리 애써도 태도가 좋아지지 않는 학생도, 그 교실에 들어오는 모든 교사와 옆에 있는 친구들이 같이 노력하면 긍정적인 방향으로 변화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런 관계가 자리 잡히면 교사가 학생을 지도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학생의 반발이나 학부모 민원을 예방할 수 있고, 쉬는 시간과 점심시간에 학생을 불러 상담하거나 교내를 순찰하며 생활 지도를 해야 하는 교사의 부담도 줄어들 것이다.


  이처럼 사회적 자본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신뢰이다. 신뢰는 시민의 사회적 참여를 북돋우는 요소일 뿐 아니라 삶의 모든 영역에서 우리를 더 건강하고 행복하게 만드는 핵심이다. 그래서 볼링도 수업도 동료와 함께해야 행복하다. 볼링장에서 친구와 나란히 앉아 박수를 치고 하이 파이브를 하듯이, 교실에서 수업 공개가 끝나면 동료 교사들은 손뼉을 치며 "선생님, 고생하셨어요. 오늘 수업 정말 잘 봤어요."하고 엄지를 치켜세워 보여주면 계속  수업을 공개하고 싶은 마음이 생길 것이다. 다른 교사와 학생들이 내 수업의 많은 부분을 채워준 만큼 자신도 즐거운 마음으로 다른 교사의 수업을 지원하게 되는 선순환의 시작이다.

  학교에서 외롭고 힘들다고 느끼는 순간이 많다면 '수업 친구'를 단 한 명이라도 만들어 보자. 그러면 그 친구가 또다른 친구를 소개해 줄 수도 있다. 학교 안에 그런 사람이 없다면 학교 밖의 수업연구회를 찾아가도 좋다. '나 홀로 수업'만큼은 볼링공처럼 시원하게 던져버리기를….


(처음에 언급한 매불쇼의 '사회적 자본' 관련 영상도 보시길 추천합니다. 링크도 올려요~)

https://www.youtube.com/watch?v=zp3Dbj-vYUw&t=313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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