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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수샘의 장이불재 Nov 12. 2023

튀르키예 고양이들은 왜 모두 '개냥이'가 되었을까?

- 누스바움이 말하는  신뢰의 조건

  여행 유튜버들이 튀르키예에 가면 모두 놀라는 것이 있다. 우리나라의 길고양이들은 대부분 사람을 피해 도망가는데, 튀르키예의  고양이들은 반대로 사람을 좋아해서 먼저 다가오고 안아주면 몸을 맡기고 눈을 감는다. 튀르키예 국적의 고양이들 어쩌다 '개냥이'가 되었을까?

 '1분 과학'이라는 과학 커뮤니케이터가 매불쇼에 나와 설명한 것에 의하면, 그 기원은 몇백 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 시절 오스만 제국에서는 고양이가 깨끗하고 신성한 존재라는 말이 널리 퍼졌고, 모든 사람이 고양이한테 엄청 잘해주니까 고양이의 문화가 바뀌었다고 한다. 

  현재 이스탄불에는 시청에서 만든 '고양이 무상(?) 아파트'가 있어서 언제라도 와서 물과 음식을 먹을 수 있다. 심지어 고양이를 아끼는 튀르키예 사람들의 심리를 이용해서, 분리수거 재활용 수거 기기까지 만들었다. 페트병이나 유리병을 넣으면 아래 칸에 자동으로 고양이가 와서 먹을 수 있는 물과 사료가 나오는데, 사람들이 자기 돈을 들여서 사료를 살 필요가 없으니 일거양득이라고 한다. 





  튀르키예 사람들이 고양이를 사랑하게 된 것은 종교의 영향이 크다. 이와 관련해서 튀르키예 여행 가이드인 이지영 님의 블로그에서 재미있는 이야기를 읽었다. 이슬람교의 창시자 무함마드 역시 고양이 집사였다. 어느 날 책을 읽다가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하는데, 자신의 옷자락에 잠들어 있는 고양이 한 마리를 발견했다. 무함마드는 고양이를 깨우지 않기 위해 가위로 자신의 옷자락을 잘라내고 조용히 일어섰다고 한다. 




  선지자 무함마드는 "살아있는 동물에게 행한 모든 선한 일은 진정한 하늘의 보상이 있을 것입니다."라는 말도 했다. 그런데 모든 이슬람 국가의 고양이가 사람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유독 튀르키예에서만 새끼 고양이까지도 강아지처럼 애교를 부리고 쓰다듬어 달라고 안긴다. 튀르키예 고양이들은 어쩌다가 그토록 인간을 신뢰하게 되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추리해 보기 위해, 최근에 읽은 누스바움의 『타인에 대한 연민』의 한 구절을 인용해 본다. 이 책에서 누스바움은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감정으로 '두려움'을 강조하는데, 그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수년 동안 각각의 감정을 연구하면서, 특히 두려움이 유전적·일상적으로 가장 기본이 되는 감정이며 분노와 혐오와 같은 감정으로 전염될 때 민주주의가 크게 위협당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 저는 이 모든 감정이 삶의 불확실성, 바로 두려움에서 기인한다고 생각합니다."


  튀르키예의 고양이들은 일상적인 경험을 통해 인간을 신뢰하게 되었다. 그것이 후대에 전해져서 유전적으로 사람에 대한 두려움을 잃어버리게 된 것이 아닐까? 그리고 고양이를 마음껏 사랑할 수 있도록 정부에서 지원 정책까지 만들어 주었으니, 이슬람 국가 중에서 튀르키예가 유독 '개냥이 천국'이 된 것 같다. 


  11월 말에 교사 연구년 최종 보고서를 제출하는데, 연구 주제인 '교사의 협력과 소통 역량 강화'를 위해서 무엇보다 '두려움을 없애고 신뢰를 쌓아가는 학교 문화'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주장하려고 한다. 학교 구조와 교육 관련 법률의 개정도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잘못된 구조와 법을 탓하며 일상의 문화를 가볍게 여긴다면, 구조와 법을 올바르게 바꾸기 위해 힘을 하나로 모으는 것이 더 어렵게 될 것이다. 이에 관해 누스바움은 이렇게 말했다. 


  "구조와 법이 중요하다는 데는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하지만 법이 제정 되고 시행되려면 사람들의 마음과 정신이 필요합니다. 절대 군주 국가에서는 그럴 필요가 없죠. 복종을 가능하게 하는 두려움만 있으면 되니까요. 민주주의에서는 그 이상이 필요합니다. 선에 대한 믿음, 미래에 대한 희망, 민주주의를 좀먹는 증오와 혐오와 분노에 맞서려는 결심입니다. 저는 이 증오, 혐오, 분노가 두려움을 먹고 자란다고 생각합니다."


 고양이도 사람들이 관심과 사랑을 지속해서 보여주면 두려움을 잃어버리고 사람을 믿고 따른다. 고양이 전체의 문화가 바뀌고 심지어 대를 이어 전해진다. 그렇다면 우리의 소중한 아이들을 어른들이 어떻게 대해야 할 지는 자명하다. 

  학교에서도 그렇다. 어떤 학생은 교사를 두려워하고, 어떤 교사는 학부모를 두려워한다. 같은 교실에서 생활하는 가장 약한 아이를 혐오하고 괴롭히는 장면은 한국 영화와 드라마에서 클리셰가 된 지 오래다. 이 모든 것이 구조와 법 때문이라고 말하면서 손 놓고 있는 것보다, '지금 여기, 우리가 함께 신뢰를 쌓아가는 시간'에 대해 더 많이 대화하고 고민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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