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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수샘의 장이불재 Nov 15. 2023

<더 웨일>, 수능이 끝난 벗들이 봤으면 하는 영화

- 학생, 선생님, 부모님께 드리는 스포 없는 추천 글

  <더 웨일(The Whale)>은 2023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남우 주연상과 분장상을 받은 영화이다.  특히 남우 주연상을 수상한 미이라 시리즈의 주인공 '브랜든 프레이저'의 명연기에 감전되어, 1분 1초도 화면 앞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붙들려 있었다.

  분장은 물론 다른 배우들의 연기, 연출, 음악도 몰입을 도왔고 희곡이 원작인 만큼 한 편의 연극을 보는 것 같은 긴장감에 흠뻑 빠졌다. 배우들이 서로를 향해 거친 대사를 난사할 때는 그들이 서 있는 무대의 온도와 습도, 냄새까지 피부에 와닿는 느낌이었다. 이런 영화를 집에서 편하게 누워 볼 수 있음에 감사했다.  그것도 넷플릭스에서 볼 수 있다니!



  어떤 내용일지는 넷플릭스 첫 화면에 나오는 짧은 소개 글만 보면 충분하다.


 '온라인으로 글쓰기를 가르치는 대학 강사. 체중 문제로 인해 악화하는 건강과 고립된 생활, 그리고 깊은 슬픔 속에서 십 대 딸과의 관계를 다시 회복하기 위해 사력을 다한다.'


 식상한 '부녀의 관계 회복 이야기'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이 작품은 다소 창의적인 관객의 상상력도 가볍게 따돌린다. 한정된 공간이지만 매우 다채로운 이야기가 펼쳐진다.

  사실 나는 올해 들어 영화에 흥미가 확 떨어졌다. 나와 내 주변 사람들의 삶과 연결 고리가 없는 영화는 아예 관심을 꺼버렸고, 어쩌다 흥미가 생겨서 보게 된 영화도 20~30분을 넘기기 어려웠다. 인물의 다음 행동, 이어지는 대사가 나의 예상을 벗어나지 못하면 바로 화면을 끄고, 예능이지만 먹고 사는 문제를 다루는 <어쩌다 사장>이나 <장사천재 백사장>이 오히려 리얼했다.


  하지만 <더 웨일>은 달랐다. '온라인, 글쓰기 강사, 체중 문제, 십 대 딸과의 관계'라는 키워드도 흥미로웠지만, 사건 전개에 대한 나의 짐작이 번번이 틀려서 즐거운 모멸감을 느끼며 결말까지 달렸다. 무엇보다 이 영화는 '글쓰기'에 관한 잔잔하지만, 계속 여운이 남는 서사시 같은 작품이라서 나의 지성과 감성의 리셋 버튼을 모두 눌러주었다. 국어교사로서 가장 관심이 많은 분야가 글쓰기라 더욱 그랬다.

  수능을 끝낸 학생과 선생님, 그리고 부모님까지 이 영화를 보고 좋겠다. 단, 혼자 보길 추천한다. 팝콘을 나눠 먹으며 볼 말한 가족 영화가 아니고, 15세 영화이지만 초반에 다소 불편한 장면도 있다. 일부러 관객의 혐오 코드를 건드리려고 하는 감독의 고마운(?) 도발이니, 가볍게 받아넘기면 된다. 그다음부터는 작품의 제목처럼 한 마리 고래가 되어 자유롭게 생각하고 느끼고 자신의 삶으로도 들어가 헤엄치면 된다.

  학생이라면 정답이 하나인 오지선다의 세계에서 빠져 나와서, 정답이 없는 '에세이의 세계'로 들어가 몸과 마음을 리셋해 보길. 그리고 수능을 향해 달려가는 아이를 지켜보며 힘든 시간을 보냈을 선생님과 부모님들에게도 위안을 주고 새로운 삶의 영감도 주는 영화가 될 것이다. (꼭 수능이 아니더라도, 정답이 정해져 있는 길을 걷느라 지친 영혼들에게도 추천하고 싶다.)


"네 에세이는 훌륭해. 그 에세이가 바로 너야"라는 대사가 나오는 장면을 보면서, 수능이 끝나도 이어져야 할 삶의 에세이를 다시 구상하면 좋겠다. '어떤 문장으로 시작할지, 주제를 어떻게 정할지, 누구에게 보여줄지….'  무엇이라도 쓴다면, 쓰기를 포기하지 않는다면 이 영화가 그리 고통스러운 여운을 주지는 않을 거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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