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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수샘의 장이불재 Dec 06. 2023

김오랑 소령과 정선엽 병장의 용기는 어디에서 나왔을까?

- 영화 <서울의 봄>, 이름 없는 영웅 이야기

  영화 <서울의 봄>을 본 지 1주일이 넘었지만, 계속 마음에 남아 가슴을 시리게 만드는 인물이 있다.  반란군에 맞서다 전사한 김오랑 소령과 정선엽 병장이다. 김오랑 소령은 특전 사령관을 지켜야 하는 비서실장이었고, 전시에는 목숨을 바쳐서라도 사령관을 지켜야 하는 책임자였다. 그래서였을까? 자리를 피하라는 정병주 특전 사령관의 명령을 어김으로써 자신의 명예를 지켰다. 

  그런데 정선엽 병장은 12.12 당시에 육군본부 벙커를 지키라는 명령을 받은 초병 중 1명일 뿐이었다. 전두환의 명령을 받은 특전사 병력이 벙커로 쳐들어올 때 다른 초병들은 도망가거나 순순히 M-16 소총을 넘겼지만, 그는 끝까지 저항하다가 가슴에 3발, 목과 머리를 관통하는 1발의 총상을 입고 숨졌다. (육군 병장으로 제대한 나도 부대 위병소에서 몇 개월간 초병으로 근무했다. 나였다면, 후임 병사의 총까지 걷어서 공손하게 전달했을 것 같다. ㅠ.ㅠ ) 

  정선엽 병장의 선택은 훗날 전두환, 노태우의 죄목에 '초병 살해'라는 무거운 네 글자를 새기게 했다. <서울의 봄>에서는 단역 배우가 그의 최후를 연기했는데, 좀 더 비중 있게 다뤘으면 좋았겠다는 아쉬움이 든다.  다른 초병과 마찬가지로 도망가거나 항복하지 않은 이유가 궁금하기 때문이다. 도대체 정선엽 병장의 용기는 어디에서 나왔을까?



  궁금한 마음에 정선엽 병장 관련 기사를 읽고, 용기에 관한 책을 찾아보다가 시어도어 젤딘의  『인생의 발견』 을 다시 읽어 보았다. 젤딘은 아테네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정치인 페리클레스의 말을 인용하며 현대인의 '일과 용기'에 대해 이렇게 분석했다. 


  페리클레스는 행복을 결정하는 것은 자유이고, 자유를 결정하는 것은 용기라고 말했다. 하지만 사회는 사람들을 용기 있게 만들도록 조직되지 않았다. 사람들의 정신과 에너지를 쥐어짜는 일이 너무나 많다. 사람들을 생기 넘치고 흥미를 느끼게 하고 온전히 깨어 있게 하는 일은 너무 적다. 더 생생히 살아 있음을 느끼고 싶다면 일을 통해서 사회에 기여하는 노력을 인정받고, 재능과 예술적 기교로 돈 많은 사람들의 변덕에 복종하는 것 이상의 일을 해야 한다. 


  이 구절을 통해 정선엽 병장이 자리를 지키게 만든 용기의 근원을 짐작해 본다면,  그것은 바로 '자유'였다. 인용구에 있는 행복을 명예로 바꾸면 이런 문장이 완성된다. 


  명예를 결정하는 것은 자유이고, 자유를 결정하는 것은 용기이다!


 진정한 행복이 타인의 시선이 아닌 자신의 선택으로 완결되듯, 진정한 명예도 자신의 자유 의지에 의해 완성되는 것이 아닐까? 김오랑 소령이 나가라는 명령을 거역한 것도, 정선엽 병장이 지키라는 명령을 목숨 바쳐 완수한 것도 모두 '자유로운 선택'의 결과였다. 젤딘의 말처럼, 생생히 살아 있음을 느끼기 위해 용기를 낸 것이었다. 

  정선엽 병장은 제대를 3개월 남긴 말년 병장이었다. 국방부 헌병대의 최고참, 선임 병사로서 차마 도망치지 못했으리라.  그리고 그는 김오랑 소령과 마찬가지로 가난한 시골집에서 태어난 5남매 중 넷째 아들이었다. 다른 가족의 희생으로 공부할 수 있었고 대학까지 갔다. 군인을 넘어선 존재 자체에 대한 자부심과 함께, 주변 사람들에 대한 애정도 많았을 것이다. 그의 형도 정선엽 병장이 어릴 때부터 의협심과 애국심이 남달랐다고 증언했다. 그런 그였기에 혼자라도 남아서 벙커를 지키려고 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다룬 영화 <화려한 휴가>에서는 택시 기사 출신인 시민군 인봉의 선택을 감동적으로 묘사했다. 계엄군의 진압 작전을 앞두고 집으로 돌아간 인봉이 갓난아기를 안고 오열하는 모습은 나에겐 최고의 명장면이다. 전남도청으로 돌아간 그가 계엄군의 총을 맞고 숨지는 모습도 선명하게 남아있다. 



  몇 년 후가 될지 모르겠지만 정선엽 병장의 용기를 제대로 보여주는 영화가 나오길 기대한다. <화려한 휴가>의 인봉처럼, 그의 명예로운 선택도 역사에 더 선명하게 남길 바란다.  그의 죽임이 단순한 순직이 아니라 '전사'로 바뀐 것은 놀랍게도 2022년 12월이다. 아직 그에 대해 알고 싶은 것들, 알리고 싶은 것들이 많다.




http://kwangju.co.kr/article.php?aid=167075370074653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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