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핸드폰과 노트북은 항상 80~85%만 충전되도록 설정한다. 100% 풀 충전이 된 상태로 계속 유지하는 과충전이 배터리 수명에 안 좋기 때문이다. 배터리를 0% 완전 방전된 상태가 될 때까지 사용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배터리 이온이 가장 안정적인 상태가 되는 20~80% 정도를 유지하는 것이 가장 좋다고 한다.
그런데 전자 기기의 배터리 수명이 늘어나는 효과는 신경 쓰면서도, 정작 '나의 수명이 늘어나는 효과'에는 지금까지 큰 관심이 없었다. 설령 알고 있더라도 실천을 미루거나 잊어버리고 살았다.
12월이 되어 그동안의 교사 연구년을 돌아보니, 교사가 된 이후로 몸과 마음이 가장 건강한 한 해를 보낸 것 같다. 배터리처럼, 내 에너지의 20~80%만 사용해서 그렇게 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학교에 있을 때는 달랐다. 중요한 일이 있어서 에너지 100%를 유지하며 매달리다가, 결과가 안 좋으면 에너지가 0%로 떨어져서 심한 후유증을 겪기도 했다. 주말에 계속 누워지내며 우울해하다가 가족에게 짜증을 내기도 했다. 100과 0%를 왔다 갔다면서 두통과 불면증에 시달린 적도 있다.
올해 공동 연구를 하며 <교육에 진심입니다>를 출간했고, 그동안 썼던 글들과 개인 연구에서 배우고 느낀 점을 정리해서 <이번 생은 교사로 행복하게> 한 권을 더 내게 되었다. 어떤 분들은 "왜 그렇게 연구년을 열심히 했어요? 쉬엄쉬엄하지." 하고 걱정하기도 한다.
용인삼계고에서 같이 근무했던 선생님 몇 분에게 책을 보내드리려고 오랜만에 연락했는데, 한 분이 "역시나 늘 열심히 살고 계시는군요."라고 답장이 왔다. 그래서 "올해 연구년을 기점으로 덜 열심히 살려고 해요."라고 보냈더니, "여기서 더 얼마나 열심히 살려고 그러셔."라는 반응이 돌아왔다. 내가 보낸 '덜 열심히'를, '더 열심히'로 읽은 것 같다.^^;
이런 일을 겪으니 '덜 열심히' 사는 것도 쉽지 않다는 것을 느꼈다. '덜 열심히 살려고 더 열심히 노력해야겠다'라는 다짐이 필요한 것일까?
내가 결심한 '덜 열심히 사는 것'에는 여러 가지 모습과 태도가 있겠지만, 나는 무엇보다 '글 쓰는 삶을 위한 여유'를 갖고 싶다. 올해 연구년에서 만난 선생님들과 대화를 나누며 글을 쓰고, 집에서는 나 자신과의 대화를 글로 풀어내는 과정이 나에게는 '에너지 보호' 설정의 'On'을 누른 것과 같은 효과를 보게 했다. 실패한 일에서도 의미를 발견했고, 성공한 일도 부족한 점이 보였다.
내년에도 글을 쓸 시간과 기력이 사라질 정도로 열심히 살지 않고, '글을 써서 뭐 하나'하는 무기력이 나를 지배하지 않도록 노력하고 싶다. 에너지가 20% 이하로 떨어질 것 같으면 "도저히 못 하겠습니다. 다음에 하겠습니다"라고 용기 내어 말하고, 에너지가 80%를 넘어 폭주할 것 같으면 "욕심내지 말자, 꼭 내가 아니어도 된다."라고 나를 다독여야겠다.
중요한 것은 내 안의 에너지를 적절하게 보존하며 수명을 늘리는 일이고, 그럼으로써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에너지도 지켜주는 것이다. 나와 내 주변 사람들의 에너지가 방전되거나 풀 충전될 위험을 없나를 살피는 것, 글쓰기가 주는 선물 중의 하나이다. 꼭 글쓰기가 아니어도 괜찮다. 누구든 마음만 먹으면 보이는 마음 속 '에너지 보호' 모드를 켜고, 이제 무엇을 하면 될지 천천히 생각해보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