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마지막 날이라 희망적인 이야기를 하고 싶었지만, 계속 미련이 남아서 그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해보려고 한다. 故 이선균 배우의 사건을 접하면서 계속 마음이 아팠던 것은, 이선균 배우 본인과 그의 가족, 그리고 동료 배우들의 고통이 내게 전해졌기 때문이다. 그들이 실제로 겪은 고통의 말단을 간접 체험했을 뿐이지만, 그 정도로도 몸에서 기력이 빠져나가고 우울감이 채워지는 느낌이었다.
세 번이나 포토 라인에 서야 했던 이선균 배우와 그의 가족, 그리고 지인들의 비참한 심경에 공감하는 나 자신을 경계해야 할 만큼, 한 명의 유명인에 대한 권력을 가진 측의 조리돌림은 치밀했고 끈질겼다. 그의 사적인 부족함을 비난하는 것은 자유의 영역이지만, 단지 유명 배우라는 이유로 그처럼 오랫동안 뉴스의 상단을 차지해야 했는가는 의문이다. 서민들의 삶에 몇천 배 더 큰 영향을 미치는 권력형 비리와 사회적 약자의 고통에 관한 기사는 묻혔다.
나 역시 원하지 않았지만, 이선균 배우의 삶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그의 잘못된 선택이 원망스럽기는 하지만, 배우가 아닌 자연인 이선균에게 가졌던 호감은 버리지 않기로 했다. 나는 그의 드라마와 영화보다 여행 프로그램에 만난 그의 모습을 좋아했다. 후배를 잘 챙기면서 진심 어린 응원을 해주었고, 아빠와 남편으로서 인간적인 부족함과 고민을 털어놓은 모습도 가식이 없었다고 믿는다. 그런 그였기에 수많은 동료 배우들이 그의 마지막 길을 지켜보며 진심으로 추모한 것이 아니었을까?
루소는 『에밀』에서 “인간을 사회적 존재로 만드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인간의 연약함이며, 우리 마음에 인간애를 갖게 하는 것은 우리들이 공유하는 비참함이다."라고 썼다. 한 개인의 일탈 행위는 그 무게만큼 도덕적으로 비난하고 법적인 처벌을 받게 하면 된다. 그러나 권력을 가졌다고 해서 비난받는 개인의 비참함마저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치부하는 것은 너무 잔혹하다. 인간의 비참함은 운동장에 버려진 공처럼, 길거리에 굴러다니는 돌처럼 이리저리 발로 차고 짓밟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나와 같은 평범한 서민들에게 인공지능보다 무서운 것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똑같은 생명을 지닌 인간을 사물처럼 취급하는 권력가, 언론인, 유튜버들이다.
그가 동료와 함께 떠난 여행기를 추억하며, 한 인간의 연약함을 다시 생각해 보려 한다. 그렇게나마 그를 추모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