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인가, 모둠활동인가?

- 교사의 5월 이야기(3)

by 글쓰는 민수샘

어제 용인의 한 중학교에서 ‘배움중심수업’을 주제로 전문적 학습공동체 강의를 마치고 잊지 못할 질문을 받았습니다.


“선생님, 그러니까 아이들에게 지식도 필요한 것이지요? 지식도 중요한 것이지요?”


올해 교사 경력 18년째인 저보다 훨씬 선배님이신 그 분의 질문에 가슴이 먹먹해졌고 이어서 죄송함이 밀려왔습니다. 강의에서 ‘행과 연이 자유로운 시’ 창작 사례로 학생들의 작품을 소개하면서 이렇게 말씀을 드렸거든요.


“아이들을 믿는다는 것은 단지 기다려주고 인내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 속에 시인이 살고 있다고 믿는 것입니다. 다른 과목에서는 아이들 속에 수학자가, 과학자가, 예술가가 살고 있다고 믿는 것입니다. 아이들이 가지고 있는 지식의 양은 차이가 나지만 상상력, 표현능력, 탐구능력은 크게 차이가 안 난다고 합니다. 모자란 지식은 모둠활동을 통해 친구들이, 또 교사가 채워줄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수업을 통해 능력을 키워주는 것입니다.”


강의에서 ‘요즘 내 수업을 음식에 비유하면?’을 주제로 선생님들이 발표했는데, 저에게 질문을 던진 선생님은 곤혹스러운 표정으로 ‘중국집 볶음밥’으로 자신의 수업을 비유했지요. 맛이 없더라도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해, 필요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먹어야하는 음식처럼 그런 수업을 하고 있다고 부끄러워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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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어쩌면 제가 요즘 하고 있는 어설픈 모둠활동보다 오히려 잘 짜여진 강의식 수업이 대부분의 학생들에게는 더 의미가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 선생님의 ‘중국집 볶음밥’은 아이들의 배를 부르게 하지만, 그럴듯한 철학과 명분만 있는 모둠활동은 ‘그림 속의 진수성찬’처럼 겉으로는 화려해보지만 막상 아이들에게 영양가 없는 메뉴만 제공하는 것은 아닐까 고민됩니다.


‘나의 성장소설 쓰기’를 주제로 한 첫 수업에서 사진 속의 감춰진 진실을 추리해서 줄거리를 만들고 소설의 5단계 구성으로 바꿔보는 수업인데, 아이들의 창의성도 잘 끌어내지 못 했고 소설의 구성 원리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에도 도달하지 못 한 것 같아 자괴감이 계속 들었습니다. 차라리 다양한 영화나 소설의 줄거리와 구성을 예로 들며 설명했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요.


중요한 것은 강의식 수업이라고 지식만 전달하는 것은 아니고, 모둠활동 수업이라고 단순한 활동만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 같습니다. 또 아이들 입장에서도 다양한 생각과 스타일을 가진 선생님들에게 배워야 더 풍요로운 배움을 얻을 수 있을 것 같고요.


그래도 포기할 수 없는 것은 제 수업의 목표는 ‘만남’입니다. 교과에서 꼭 필요한 지식도 ‘어떻게’ 아이들과 만나게 할 것인가가 교사의 주된 고민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교과서의 내용 그대로, 교사의 설명을 통해서만 지식과 만나고, 그 지식을 바탕으로 다른 친구의 생각이나 경험과 만나고 현실 세계의 문제점과 연결되지 못한다면 교사나 학생이나 금방 잊혀지는 수업의 연속이 되겠지요.


어제의 경험을 통해 배움중심수업을 이야기하며 지식의 가치를 평가절하하지 않도록 조심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지식이냐 역량이냐 선택하는 이분법이 아니라 지식과의 즐거운 만남을 통해 역량을 키우는 수업을 가지고 선생님들과 더 깊이 만나고 싶습니다.


질문을 통해 저에게 이런 성찰과 다짐을 하게 해주신 ‘중국집 볶음밥’ 선생님, 정말 감사합니다. ^^


(아, 그리고 생각해보니 요즘 내 수업을 그냥 '볶음밥'으로 적어주신 선생님과의 차이을 듣지 못 한 것이 아쉽네요. 이질적 경험과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만나서 대화하는 교류가 진정한 배움의 기쁨인데 아직 부족한게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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