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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수샘의 장이불재 May 16. 2024

모방시 공동 창작, 신경림의 <장자를 빌려- 강남에서>

  신경림 시인의 <장자를 빌려-원통에서>란 작품이 2024 수능특강 문학편의 현대시 11에 실려있다. 교재 속에서 '작품 (가)'로 불리는 이 시는 전국의 모든 고등학교와 학원에서 교사의 입을 빌려 수천 번 낭송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얼마나 아이들의 마음에 다가갔을까, 하는 생각해 보면 기분이 씁쓸해진다. 더군다나 문제 속에 포함되어 있는 <보기>에는 작품의 주제가 다음과 같이 '친절하게' 설명되어 있다. 


  『장자(莊子)』의 「추수(秋水)」 편에 나오는 ‘대지관어원근(大知觀於遠近: 큰 지혜는 멀리서도 볼 줄 알고 가까이서도 불 줄 아는 것이다.)’이라는 글귀에서 영감을 얻어 창작된 (가)는 멀리서 세상을 바라볼 때와 가까이에서 다른 사람들의 삶을 바라볼 때의 화자의 인식의 변화 과정을 통해 성급하게 삶의 이치를 깨달으려는 태도를 경계하며, 세상을 바라보는 바람직한 태도에 대한 깨달음을 역설하고 있다.


  이러한 주제가 작품 속에 어떻게 형상화되어 있는지를 찾아보는 것도 의미가 있지만, 거기에서 감상을 멈추면 '성급하게 작품의 주제를 깨달으려는 태도'를 학생들에게 심어줄 수 있다. 그래서 이 작품만은 간단하게라도 표현활동을 하고 싶었다. 수능특강의 다른 작품으로 모방시를 써봤기 때문에, <장자를 빌려-원통에서>는 일부 구절을 함께 바꿔보는 '공동창작'에 도전해 보기로 했다. 


  원작에서 화자는 설악산 대청봉에서 내려와 속초와 원통에 사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들으며 자신의 인식을 전환하게 된다. 여기에 힌트를 얻어서, '설악산 대청봉'을 '롯데월드타워'로,  '원통'을 '강남'으로 바꾸기로 했다. 높은 곳에서 바라본 도시의 모습은 화려하고 질서 있게 보이지만, 도시의 거리와 골목을 직접 다녀보면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는 것을 금방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위에 있듯이 '~하고, ~듣고, ~보니'를 각자 간단하게 적어보라고 한 후, 멘티미터를 통해 실시간으로 공유했다. 한두 개씩 글이 올라오니까, 다른 학생들도 친구의 표현에 영감을 얻어 글을 올리기 시작했다. 고3이다 보니 학원으로 향하는 모습이 먼저 떠올려서 표현한 아이들이 많았지만, '전세 사기, 만원 지하철' 등의 시사적인 내용으로 창작한 학생이 있어서 신기했다.  (진도 때문에 모든 학급에서 하지 못한 것이 아쉬웠지만, 이번에 못 한 반은 다른 작품으로 공동 창작을 하고 싶다.)


  아이들이 쓴 구절을 하나로 모아서, 다음 수업 시간에 '세상에 한 편밖에 없는 공동 창작 작품'을 아이들에게 공개했다. 장자의 말씀처럼, 수업 시간에 만난 작품을 꼼꼼하게 읽어 보는 눈도 필요하고, 작품의 내용을 세상 밖의 일로 연결 지어 멀리 바라보는 눈도 필요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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