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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수샘의 장이불재 May 10. 2024

버릴 수 없는 노트들,  '수업일기, 학급일기'의 추억

 15년이 넘었지만, 버리지 못하는 노트가 있다. 나의 두 번째 학교인 남양주시 진건고등학교에서 아이들이 쓴 일기이다. 지난 주말, 집에 있는 옛날 자료를 정리하다가 오랜만에 읽어보게 되었다. 다른 책들과 자료는 과감하게 재활용 박스로 보냈지만, 이 노트들은 앞으로도 못 버릴 것 같다. 



   그중에서도 2008년에 고1 국어를 가르치며 받은 수업일기와 담임 반 아이들에게 쓰게 한 학급일기를 읽어보며 행복한 시간 여행을 하고 있다. 내년에 고3이 아닌 다른 학년을 가르치거나, 담임을 맡으면 다시 시도하고 싶을 만큼 좋은 교육적인 효과도 있어서 일기의 내용을 조금 나누고 싶다. 먼저 수업일기의 추억이다. 


  수업일기에는 수업 분위기와 내용, 수업 중 좋았던 점과 아쉬운 점, 선생님에게 하고 싶은 말 등을 자유롭게 적게 했다. 처음에는 학급 회장과 부회장, 수업 도우미 중에서 먼저 적게 해서 모범을 보이면 좋다고 생각했다. 처음 몇 명의 시범 발표가 끝나면 번호 하나를 뽑아서 그 번호부터 쭉 이어서 한 명씩 수업일기를 적고 다음 시간에 발표하게 했다. 발표는 수업 시작하고 바로 한 명씩 앞에 나와서 2~3분 정도씩 했는데, 그대로 읽지 않고 말하듯이 발표하도록 지도했다. 

  그런데 어느 학급의 첫 번째 일기를 보니, 너무나 모범적이었던 학생이 내가 말해준 내용을 번호순으로 그대로 옮겨 적은 것을 발견했다. '수업 중 나빴던 점'이라고 소제목을 붙인 것이 귀여웠다. 그리고 '기타 더 나누고 싶은 이야기'에 국기에 대한 맹세가 바뀐다는 내용을 적어서, '아, 이때 바뀌었구나' 하고 회상할 수 있었다. 



  다행히도(?) 두 번째 학생부터는 자유롭게 적고 싶은 내용만 담아서 길이가 짧아졌다. 마지막에는 친구들이 관심 있어 할만한 심리테스트나 넌센스 퀴즈 같은 것을 추가하는 것이 대세가 되었다. 듣다 보니까 비슷한 내용이라도 더 재미있게 발표하는 아이가 있어서, 친구들을 통해 자연스럽게 화법을 배우는 의미도 있었다. 

  갈수록 솔직해지는 수업일기를 읽으며 당시에도, 지금도 성찰하게 된다. 한 시간 동안 열심히 가르친 작품의 제목을 '어부사지사'로 잘못 적은 아이도 있고, '많이 졸렸다', '어렵다'를 반복하면서 수업에서 배우고 느낀 점을 적지 않은 아이들이 많아서 강의 위주로 수업했던 한계를 새삼 알게 되었다. 





  다음은 학급일기의 추억이다. 이것은 야자가 있어서 가능했던 것 같다. 이름과 다르게 '반강제 '야자라서, 대부분은 야자 시간에 열심히 적었다. 내용은 그날 우리 반 수업 이야기, 재미있는 사건 소개, 자기소개와 힘든 학교생활에 관한 넋두리 등이었다. 

  어떤 아이는 재미없는 공부 말고 다른 할 일이 생겨서 다행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학급일기는 발표는 하지 않고, 노트 두 권을 준비해서 번호 짝수와 홀수로 나눠 쓰게 했고, 끝 번호까지 오면 노트를 바꿔서 쓰게 했다. 앞에 친구들이 적은 내용을 읽으면서, 같은 반 친구를 알아갈 수 있는 소통의 창구 같은 역할을 했던 것 같다.


  2008년에 1학년은 남녀 분반이었고, 나는 41명이 있는 여학생 학급의 담임이었다. 그 전해까지 4년 연속 고3 담임을 했기 때문에, 상큼하고 발랄한 1학년 여학생을 가르치면서 행복했던 기억이 많다. 고3 담임 버릇을 못 고치고 입시 얘기로 부담감을 많이 주고, 야자 감독할 때 떠드는 아이를 불러내어 체벌을 한 내용이 적혀 있어서 부끄러움도 느꼈다. 





  담임을 다시 하게 되면 단톡방이나 패들렛 같은 SNS에 공간에 학급일기를 쓰게 하고 싶지만, 아이들이 자발적으로 즐거운 마음으로 참여할지 모르겠다. 그래도 예전 학급일기를 읽으며 다시 해보고 싶은 것이 하나 생겼다. 

  월별로 생일이 같은 아이들을 모아 사진을 찍어서 게시판에 붙였던 기억이 어떤 아이의 일기를 통해 소환되었다. 그래서 예전 파일을 검색했더니 '생일을 축하해요.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를 제목으로 한 PPT 파일이 있었다. 학급 환경미화 심사가 있던 시절이라 그랬겠지만, 나는 이 게시판 제작에 매우 집착했다. '다른 것은 못 해줘도 생일만큼은 챙겨주자'는 마음으로, 매월 첫째주 학급 시간에 축하 노래를 불러주며 '생파'를 했던 추억이 방울방울 솟아났다. 아이들이 1000원씩 내고, 나도 조금 더 보태서  과자나 아이스크림 파티를 하던 그때가 그립다. 


  다음 해인 2009년에 나는 멀리 화성시의 다른 고등학교로 옮기게 되었다. 2008년에 담임으로 만난 41명의 여학생과 혜어지게 되어 무척 섭섭했고, 아이들도 나에게 편지를 많이 보내주었다. 15년이 넘었지만, 그 시절 아이들의 정겨운 이름과 글씨들, 꽃보다 예쁜 사진까지 모두 다 분에 넘치는 선물처럼 느껴진다. 다시 담임이 하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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