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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수샘의 장이불재 May 26. 2024

가난한 비문학 수업 노래

신경림 시인이 돌아가신 2024년 5월 22일,

나는 '가난한 사랑 노래'를 아이들과 함께 읽으며

시인을 추모하려고 했으나 그러지 못했다.

비문학 경제 지문의 그래프를 분석하고

경제 성장 모형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설명하다가

등에 땀이 젖은 채로 나왔다.

쉬는 시간에 교무실에서 다음 주에 진도 나갈

암세포의 증식에 관한 과학 지문을 수십번 읽고

암호 같은 <보기>에 깨알 같은 글씨로 분석한 내용을 적다가

다시 '가난한 사랑 노래'가 들려왔다.



비문학 문제 앞에서 국어 교사라고 두려움이 없겠는가

독서의 즐거움에 대한 그리움을 버렸겠는가

책을 사랑하는 마음을 모르겠는가

하지만 갈수록 어려워지는 비문학 문제를 풀다 보면

이 모든 것들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 지겹게 확인한다.

지문에 담긴 이론이 아니라

지문의 구조를 파악하고 핵심 내용을 이해하면 된다고 말하지만

지문을 제대로 가르치기 위해서는

철학, 경제, 생물, 물리, 미학, 전문 기술 분야를 왔다 갔다 하며

관련 지식을 검색하고 내 언어로 소화해 교실에 들어가야 한다.

생물 지문을 이해하기 위해 영어로 구글링해서 그림을 찾고

파파고로 번역해서 수업 자료를 만들기도 한다.



하긴 경제학, 생물학이 잘못이 있겠는가

하나둘 고개를 떨구는 고3 아이들이 무슨 잘못이 있겠는가

과학 지문 앞에서 초라해지고 작아지는 나에게 잘못이 있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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