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신춘문예 당선작, 강지수 시인의 '면접 스터디' 읽기
<면접 스터디>는 강지수 시인의 2024년 문화일보 신춘 문예 당선작이다. 이 시를 읽게 된 건, 아니 듣게 된 건 출근길 차 안에서다. 핸드폰에 있는 팟캐스트 앱을 잘못 눌러 '문장의 소리'라는 프로그램을 우연히 듣게 되었는데, 신기하게도 진행자가 이 시의 첫 행을 낭송하는 순간이었다. 목소리도 참 좋았고, 시의 내용이 쉽고 선명해서 홀린 듯이 끝까지 들었다.
허리를 반으로 접고 아 소리를 내면
그게 진짜 목소리라고 한다
진짜 목소리로 말하면 신뢰와 호감을 얻을 수 있다고
그러자 방에 있던 열댓 명의 사람들이 제각기 허리를 숙인 채
아 아 아 소리를 낸다
복부에서 흘러나오는 진짜 목소리가 방 안을 채운다
이제 그 음역대로 말하는 겁니다
억지로 꾸며낸 목소리가 아닌 진짜 당신의 목소리로요
엉거주춤 허리를 편 사람들이 첫인사를 나눈다
안녕하십니까 반갑습니다 저는 대전에서 왔고……
멋쩍은 미소를 짓고 몇 번 더듬기도 하면서
말을 하다가 불쑥 허리를 접고 다시 아 아 거리는 이도 있다
나는 구석에 앉아 이 광경을 바라본다
선생님이 손짓한다
이리 와서 진짜 목소리를 찾아보세요
쭈뼛거리며 무리의 가장자리에 선다
허리를 숙인다 정강이가 보이고 뒤통수가 시원하다
아 아 아
낮지도 높지도 않은 미지근적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옆집 아이와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쳐 어색하게 안부를 물을 때
보다는 낮고
지저분한 소문을 전할 때
보다는 높다
언뜻 저 사람과 그 옆 사람의 목소리하고 똑같다
우리 셋이 동시에 얘기하면 참 재미있겠죠
진지한 모임에서 그런 말은 할 수 없어서
그저 소리만 낸다
아 아
교실은 소리를 머금은 상자가 되고
이가 나간 머그잔에 물을 담아 마시다가 바닥에 흘렸다
닦아내려고 허리를 숙인 찰나
물 위로 번지는 그림자가 보였다
진짜 같았다
고개를 들었다
진짜사람들이 진짜미소를 지으며 진짜 멋진 진짜옷을 입은 게
이제야 눈에 들어왔다
우리는 다 합격할 수 있을 거예요
진짜행복이 밀려왔다
'출퇴근길에 문학 콘텐츠를 들을 적이 있던가?'라고 생각했던 나는 멋쩍은 국어 교사였다. 지저분한 세상 뉴스 말고 가끔은 시와 소설, 수필의 낭송을 듣고 작가의 이야기에 귀를 쫑긋 세워봐도 괜찮을 것 같았다.
강지수 시인은 이 시 말고도, <시운전>으로 매일신문 신춘 문예에도 동시에 당선이 됐다고 한다. 꽃과 나무의 이름, 인상을 팍 쓰고 있는 관념어, 실체를 알 수 없는 고통의 호소가 없어도 마음을 잡아끄는 매력이 있는 작품이었다.
시 <면접 스터디>가 전하는 '진짜행복'을 나도 느낀 적이 있다. 임용시험을 준비할 때 스터디를 했는데, 일주일에 한 번 노량진에 스터디 멤버를 만나러 나서는 순간부터 정말 행복했다. 맡은 부분을 열심히 공부해 가서, 다른 멤버에게 마치 선생님처럼 설명할 때 나의 목소리는 내 눈치를 보는 가족에게 짜증 낼 때보다는 낮고, 학원에서 어색하게 수업할 때보다는 높았을 것이다.
<면접 스터디>를 읽고 내가 이해한 진짜 행복은 '평등한 불안'이었다. 우리 인생이 다 그렇지 않은가? 유한한 존재임을 유일하게 알고 있는 생명체인 우리는 무한한 행복이라는 불가능한 꿈을 위해 적당히 불순하고 때로는 완벽하게 잔인해진다.
취업 준비생들에게 순간의 행복도 사치이지만, 모두들 허리를 접고 자기의 진짜 목소리를 찾고 있는 순간에 이 시의 화자는 진짜 행복을 느꼈다. 면접 스터디를 하는 이들 중 한두 명만이, 어쩌면 모두 '진짜 멋진 진짜옷'을 입을 수 있는 합격을 손에 쥘 수 없겠지만, 모두의 불안이 평등해지는 순간은 진짜임을 본능적으로 알게 되었다.
그래서 우리는 '면접 스터디'처럼 '인생 스터디'를 함께 하는 다른 존재가 필요하다. 나도 모르게 진짜 목소리로 내고, 다른 이들의 진짜 목소리를 듣고 공감하는 그런 순간들이 쌓이고 쌓이면 인생은 가끔 아름다워 보이고 살만하다는 느낌이 든다. 높지도 낮지도 않은,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그런 미지근한 삶의 여운을 즐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