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력은 나의 힘

- 2024년 8월 19일 안과를 나오며

by 글쓰는 민수샘

시력은 미끄럼틀이 아니라 계단을 타고 내려온다는 걸,

한두 칸이 아니라 서너 칸을 떨어질 수 있다는 것을

내 몸이 가르쳐 주었다.

책 속의 글자가 끊어져 보이고

영화 주인공의 얼굴이 어긋나 보였던 몇 분의 시간이

내게 속삭여 주었다.


귀에 사는 귀뚜라미와 친구가 되고

발치 이후를 걱정하며 보험을 들고

무릎이 시려 산에 못 가고

어깨가 시려 사랑하는 사람들을 안지 못하는

그런 몸은 아직 아니지만


검사 결과 이상이 없다는 안과 의사의 말보다

세상이라는 보자기에서 다시 펼쳐진 풍경들이 더 또렷했다.

하늘은 더 깊고 투명한 푸른 색이었고

건너편에서 나에게 인사하는 아이들의 정수리는

흑백 영화로 보는 태풍의 눈처럼 선명했다.


아직 보지 못한 것들

보고 싶은 것들이 잔뜩 남아 있으니

볼 필요가 없는 것들을 망막에 남기지 말고

보지 못하고 지나치는 소중한 것을

마음에 새기라는 속삭임이

눈의 힘이라는 걸

이제야 알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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