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보니 꽤 괜찮은 질주였다

- 고1 '공통국어 교과서' 집필 후기

by 글쓰는 민수샘

공연히 시작했나, 하고 후회하는 순간도 많았다. 평일 저녁 6시에 모여 11시까지 집필 회의를 하다가 마지막 광역버스를 놓치지 않기 위해 전력 질주할 때가 최악이었다. 서울에서 밤늦게 퇴근하는 경기도민의 삶을 체험한 것이 덤이라면 덤.


통과는 되겠지만 최선을 다했나, 하는 생각이 마지막 집필본을 넘길 때까지 멈추지 않았다. 교과서 집필이 처음이라 경험 많은 선생님들을 보며 많이 배웠지만, 최종본이 진짜 최종이 되지 못하고 자꾸 새끼를 치는 신비한 생명 현상도 목격했다.


국어 교과서 집필자가 되는 상상은 현실이 되었지만, 이 교과서로 수업하는 내 모습은 아직 상상이 안 된다. 그래도 기회가 온다면 한 글자, 한 글자의 의미를 살려서 열심히 가르치고 싶은 마음이다.


어렵고 힘든 과정을 거쳐 세상에 나오지 않는 교과서가 없다는 것도 깨달았다. 다른 집필진은 물론이고 출판사 편집팀과의 의견 차이를 조정하는 일이 지난한 과정이고, 거의 완성한 원고를 뒤집어엎는 일이 다반사라 들었는데, 헐~ 진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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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서를 왜 이 따위로 만들었나, 하고 투덜대던 과거의 나가 자주 떠올랐다. 혼자 수업 활동지를 만들듯 자유롭게 교과서를 만들 수 없기에, 무난한 학습 활동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실감한 뒤론 과거의 나와 화해할 수 있었다. 그래도 더 나은 활동을 만들기 위해 열심히 공부한 것과 더 좋은 제재를 선정하기 위해 다양한 작품을 많이 읽게 된 것은 의미 있었다. 내가 맡은 문학 단원에 꼭 넣고 싶은 작품을 넣은 것도 기뻤다.


과거와 다르게 요즘은 교과서를 다양하게 재구성해서 수업을 디자인하는 선생님들이 많다. 그래도 따로 활동지를 만들지 않고 교과서만 가지고도 대화와 협력이 있는 모둠활동을 진행하고, 수준 높은 표현 활동을 할 수 있도록 노력했다.


서로를 바라보는 학생들의 눈빛이 생기를 잃어가고, 선생님들의 몸과 마음도 갈수록 사막의 공기처럼 메말라가고 있는 것이 지금의 학교 현장이다. 특히 고등학교가 그렇다. 이러한 현실에 대해서도 집필진 선생님들과 많이 이야기했고, 서로의 힘든 점을 경청하며 격려해 주었다. 교과서 선정 작업을 위해 학교에 도착한 완성본을 만져보니, 꿈틀거리는 생명체처럼 느껴졌다. 다른 학생과 선생님들도 교과서를 펼쳐서 읽고, 들고 가르치면서 그런 비슷한 기분을 느낀다면 정말 행복할 것 같다.


- 여기까지 '공통국어교과서' 7행시(?)였습니다. 끝까지 읽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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