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을 보내는 마음, 그 허우룩함에 대하여

by 글쓰는 민수샘

'이제는 시집을 보내야 할까?'라고 이 글의 제목을 붙이려다가 너무 낚시성 같아서, 약간만 낚시성인 제목으로 바꿨다.^^; 내겐 딸아이도 없고 있다고 해도 시집보낼 나이가 아니지만, 내 청춘의 또 다른 집이었던 '시집(詩集)'을 떠나보내는 마음이 매우 허전해서 기록을 남기고 싶었다.


한용운, 윤동주, 백석 같은 분들의 전집과 개인적 인연이 있는 시인들의 시집은 따로 빼놓고 보니 마지막 남은 시집이 40권 정도 되었다. 최근 몇 년 동안 대학 때부터 모으던 책을 대부분 떠나보냈지만, 2~30년을 내 곁에서 살아남는 시집들을 보내는 순간 감정이 복잡해졌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기념사진도 찍었다. 시집들의 제목을 저장했다가, 나중에 몇 권은 eBook으로라도 다시 구해 읽고 싶다.


기념으로 시 비슷한 것도 적어보았다. MBTI 'T'인 분은 위험(?)하니 아래 사진까지만 보시고, 'F'인 분은 (아침에 다시 읽어보니 많이 부끄럽지만) 시까지 읽어주시면 좋겠다. 문득 여러분은 어떤 것을 버릴 때, 가장 슬퍼지는지도 궁금해진다...





이삿짐을 쌀 때마다 늘 막차로 탑승했던 나의 시집들.

이제는 정말 보내줘야 할 때임을 느낀다.

손때보다 짙어진 세월의 먼지들이 털어도 흩어지지 않는다.

재활용 수거함에 한 권씩 넣을 때마다

켜켜이 앉아 있던 기억의 먼지들이 일어나 기지개를 켠다.

가슴을 출렁이던 시인들의 외침은 잊었지만

사랑했던, 사랑하지 못했던, 사랑하고 싶었던

거리와 향기와 이름들, 희미한 모습까지 손끝에서 살아나 말을 건다.


청춘의 또 다른 집이었던 시집들.

혁명과 비겁이 같은 이불을 덮고

회한과 희망이 고장 난 형광등처럼 번갈아 반짝이던

내 삶의 모퉁이를 지켜주던 노래들.


폐지 속으로 시집을 보내는 허우룩함에

오래전 그때처럼 라면 국물에 소주를 마시며

생일 선물로 시집을 주고받던 벗들을 위해서도 잔을 든다.

그대들의 풀무질로 여기까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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