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분의 조언으로 집에 있던 시집을 떠나보내지 않고, 학교로 가지고 왔다. 빈 서재 한 칸에는 시집 대신 아이들의 문제집이 채워졌지만, 교무실 서재에는 언제라도 꺼내 볼 수 있는 추억들이 자리 잡았다.
위에서 올려다보니, 1990년대 초부터 2010년대까지의 세월이 색칠한 그라데이션이 선명해서 마음이 짠했다. 그동안 방치했던 것이 미안해서, 가끔 한두 권씩 꺼내서 먼지도 털어낼 겸 읽기로 했다.
20대에 읽은 책을 50대에 다시 읽으니 기분이 묘해진다. 그것도 보통 책이 아니라 짜장면이 1,000원이던 시절에 2,500원이란 거금을 떨리는 손으로 건네며 샀던 시집들이다. 다른 두껍고 비싼 책은 도서관에서 읽었지만, 시집만큼은 소장하고 싶었다. 아마 그때도 20~30년 후에 다시 읽어도 좋을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나 보다.
남아있는 시집은 대부분 '창비시선'과 '문지 시인선'이다. 그중에서도 창비 100번째 시집인 김남주 시인의 <사상의 거처>에 먼저 손이 갔다. 그러고 보니, 올해는 시인이 세상을 떠난 지 30주기가 되는 해이다. 실로 오랜만에 그의 시집을 넘기니 잔잔한 감동이 출렁였다.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어 돈과 명예를 다 얻을거야'라는 야무진 꿈에 취해있던 내가 처음 선물받았던 시집이 김남주 시인이 옥중에서 쓴 <나의 칼, 나의 피>였다. 지금 들어도 무서운 제목인데, 국문학과에 갓 입학했던 나는 방안에서 이불을 뒤집어 쓰고 덜덜 떨면서 읽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나는 그의 시에서 짙은 서정을 느꼈다. '이처럼 우리 한반도를 아름답게 표현할 수 있다니!' 하고 감탄했다.
몸매가 작아 내 누이 같고
허리가 길어 내 여인 같은 나라
누구의 하늘도 침노한 적이 없고
누구의 영토도 넘본 적이 없는
- '학살1' 중에서
이 네 줄이, 시 '님의 침묵'의 한 구절처럼 나의 운명의 지침을 돌려놓았다. 그는 혁명가이고 전사였지만, 나에게는 경험하지 못했던 서정을 선물해 준 시인이었다. 대학에 와서 미팅과 소개팅도 몇 번 하다 때려치우고, '한반도 조국'을 사랑하게 될 줄은 미처 몰랐다. 그래서일까? 나는 김남주 시인이 감옥에서 나와 쓴 시들이 실린 시집, <사상의 거처>가 그 당시에도 참 좋았다.
그중에서도 '시인은 모름지기'가 내 가슴의 '엑스텐'에 명중해서 기분 좋은 통증을 느꼈다. 이 시를 쓸 당시의 김남주 시인보다 인생을 더 살았지만, 아직도 나는 '그 따위 권위 앞에서' 작아지는 존재를 느낄 때가 있기 때문이다. 대신 '주름살과 상처자국투성이의 기구한 삶' 앞에서 스스로를 낮추는 시인의 겸허함에는 고개가 숙여졌다.
시인은 모름지기
공원이나 학교나 교회
도시의 네거리 같은 데서
흔해빠진 것이 동상이다
역사를 배우기 시작하고 나 이날이때까지
왕이라든가 순교자라든가 선비라든가
또 무슨무슨 장군이라든가 하는 것들의 수염 앞에서
칼 앞에서
책 앞에서
가던 길 멈추고 눈을 내리깐 적 없고
고개 들어 우러러본 적 없다
그들이 잘나고 못나고 해서가 아니다
내가 오만해서도 아니다
시인은 그 따위 권위 앞에서
머리를 수그린다거나 허리를 굽혀서는 안되는 것이다.
모름지기 시인이 다소곳해야 할 것은
삶인 것이다
파란만장한 삶
산전수전 다 겪고
이제는 돌아와 마을 어귀 같은 데에
늙은 상수리나무로 서 있는
주름살과 상처 자국투성이의 기구한 삶 앞에서
다소곳하게 서서 귀를 기울여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비록 도둑놈의 삶일지라도
그것이 비록 패배한 전사의 삶일지라도
김남주 시인의 시가 문제집에 실릴 만큼 세상이 많이 변했다. '시인은 모름지기'를 검색하니 여러 가지 해설이 나왔다. 세상 친절한 해석을 읽다 보니 흐뭇하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다. 김남주 시인이 이렇게라도 기억되는 것은 다행이지만, '도둑놈의 삶'과 '패배한 전사의 삶'이 단 한 줄로 정리되는 현실은 슬펐다.
이 구절은 시인 자신의 삶을 처절하게 평가하는 언어이고, 애증이 모두 담겨있는 표현이다. 비록 도둑놈과 패배한 전사였지만, 그는 자신의 삶 앞에 다소곳하게 무릎을 꿇고 진실을 고백했다. 그러나 권력과 자본 앞에서는 고개를 꼿꼿하게 세우고 자존심을 지켰다.
2024년에 다시 만난 이 시는 '교사는 모름지기'로 읽혔다. 겨우 열 몇 살을 먹은 학생이라도 '파란만장한 삶'을 지나온 아픔을 간직하고 있을 수 있고, 답답하고 한심해 보이는 동료 교사라도 '산전수전 다 겪고' 저렇게 변할 것일 수 있다. 이런 기구한 삶 앞에서 교사라면 모름지기 '다소곳하게 서서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김남주 시인이 나에게 소주 한 잔을 따라주면서 쉰 목소리로 말해주는 것 같았다.
아직 살아계셨다면 '의사는 모름지기, 검사는 모름지기, 아니 대통령은 모름지기'라고 일갈했을지도 모른다. 김남주 시인은 아직 정정한 나의 어머니보다 한 살 어린 1945년 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