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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수샘의 장이불재 Oct 21. 2024

우리 인생과 닮은, 첫 마라톤 대회 완주기

2024년 10월 20일 일요일, 인생 첫 마라톤 대회에 나갔다. 대회를 준비하는 처음 과정과, 총성이 울리고 골인 지점을 향해 뛰는 중간, 그리고 달리기를 마치고 쉬면서 함께 즐기는 마지막 시간우리의 삶과 비슷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마라톤의 '처음-중간-끝'과 인생을 비교해서 조금 적어보려고 한다. (겨우 5km를 뛰고 이런 글을 쓰니, 마라톤 완주라도 하면 무슨 대하소설을 쓸 것 같다. ㅎㅎ)




마라톤의 시작은 걷기였다. 작년에 교사 연구년을 하면서 집에 있는 시간이 많을 것 같아 당근에서 러닝 머신을 샀다. 틈나는 대로 걷다 보니 숨차고 땀나는 것이 점차 불쾌함에서 상쾌함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집 밖으로 나가 걷는 시간도 늘어났다. 가보지 않은 길도 걸어보고 뒷산에도 올랐다. 샛길로 빠지기도 하고, 걷다가 힘들면 벤치에 앉아 주위 풍경을 눈에 담으며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돌아오곤 했다.


내 인생의 첫 30년도 걷기였다. 러닝 머신 위에서 조심히 걸으며 리듬을 익히듯 엄마와 아빠 손을 잡고 낯선 집, 낯선 골목, 낯선 학교를 향해 걸었다. 20대가 돼서는 친구들의 손을 잡고 씩씩하게 대로 한 가운데를 걸었다. 가끔은 샛길로 빠져서 두리번거리다가, 때로는 도망치다 넘어져 다치기도 했다. 그리고 사랑하는 이와 벤치에 앉아 함께 할 미래를 이야기하고, 희미하지만 저 멀리 보이는 꿈을 응원하기도 했다.


마라톤 대회에 처음 나간 건 큰아들이었다. 여러 가지 운동을 하다가 러닝에 빠져 동호회도 만들어서 달리기에 열중했다. '운동은 장비빨'이라고 선수들이 신는 러닝화를 사 모으던 큰아이들이 내게도 한 켤레를 하사해(?) 주었다. 따져보면 '내돈내산'인데 왠지 모르게 고마웠다. 그걸 신고 러닝 머신 위에 오르니까 뛰는 맛이 났다. 그래서 5km 마라톤 완주라는 목표를 세웠고, 점차 뛰는 거리를 늘려갔다. 숨이 차도록 뛰는 것을 두려워하던 내가 내게 맞는 호흡법을 찾았고, 함께 뛰는 즐거움도 알게 되었다. 처음 나간 마라톤 대회 때도 '걷지 않고 계속 뛰자, 30분 내로만 들어오자'라는 목표를 세웠고, 고비가 있었지만 달성했다!



내 인생의 두 번째 30년은 달리기였다. 걷다가 우연히 들어선 샛길에서 지금까지 계속 달리고 있다. 교육대학원에 먼저 들어간 후배가 내게 교직을 이수하라고 권했고, 3년 후 31살에 교사가 되었다. 내가 무서워하던, 때론 경멸하던 선생님이 되지 않기 위해 나름 바쁘게 살았다. 처음 10년은 조심조심 걷듯이 뛰었지만, 혁신학교로 옮기고 나서부터는 새로운 것을 배워 수업에 적용하고 다시 배운 것을 나누는 보람에 힘든 것도 모르고 뛰었다. 나만의 책을 쓰고 교과서를 집필하고 싶다는 목표를 이뤘고, 이제는 질주를 멈추고 퇴직을 생각하면서 숨을 고르고 있다.


마라톤 대회의 끝은 축제의 시작이었다. 같이 대회에 나간 두 아들과 완주 메달을 목에 걸었고 아내가 사진을 찍어주었다. 주최 측에서 준비한 두부김치, 떡, 바비큐에 막걸리까지 받아서 가족과 함께 둘러앉아 먹으며 레이스의 무용담을 나누니 살맛이 났다. 주변 러닝 클럽의 생기 넘치는 뒤풀이도 구경하고, 노인부터 아기까지 함께 앉아 축하 공연과 경품 추첨까지 즐기니, 이런 평화가 참 소중하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경품은 꽝이었지만 소중한 것은 역시 Peace!!!)


우리 인생의 마지막 30년도 축제가 되면 좋겠다. 매일 이어지는 축제가 아니라, 어느 순간 돌아보면 '주어진 일을 마치고 새롭게 시작한 노년이 축제 같았네. 즐거웠네.' 하면서 미소 지을 수 있기를 바란다. 사랑하는 가족, 이웃들과 소박하지만 맛있는 음식을 나눠 먹고, 함께 걷다가 잠시 멈춰 풍경을 눈에 담고 다시 나아가는 삶의 노래를 부르며 화음을 맞추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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