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민수샘의 장이불재 Oct 19. 2024

문학이 온다, 문학과 작별하지 않는다

- 한강 작가의 첫 번째 노벨상 문학상 수상 소감에 빗대어 씀

한강 작가가 수상 소감문을 낭독하는 것을 보면서 눈물이 날 뻔했다. 노벨 문학상 수상 이후 처음 나온 짧은 소감문에도 '한강'이라는 인물의 과거, 현재, 미래가 생생하게 새겨져 있었다. 다른 수상 소감문에 나오는 상투적인 표현, 급조된 겸손, 포장된 자기애의 씨알 하나도 찾기 어려웠다.


대신 삼십 년 동안 소설가로 치열하게 살았던 삶의 민낯이 정제된 언어 속에 녹아있었다. 열정적인 삶은 훌륭한 생각을 만들고 좋은 말과 글로 영글어 다른 이들을 감화시키는 힘이 있다. 한강 작가의 이번 소감문은 나도 변화시켰다. 글을 더 쓰고 싶다, 아직 늦지 않았다는 불씨를 마음속에 심어 주었다. 그래서 감히(!) 한강 작가의 소감문의 앞 부분을 모방해서 '문학'에 대한 생각을 적어 보려고 한다.


토요일 낮에 실시간으로 쓰는 패러디라 'SDL'이라 불러도 될까? 그리고 같은 시대에 국문학과를 다녔고, 비슷한 책을 읽고 노래를 들으며 작가의 꿈을 키웠던 한강 누나이기에 너그럽게 이 정도 모방은 이해해 주실 것 같다. ㅎㅎ




<한강 작가의 소감문 원문>


저는 술을 못 마십니다. 최근에는 건강을 생각해 커피를 비롯한 모든 카페인도 끊었습니다. 좋아했던 여행도 이제는 거의 하지 않습니다. 다시 말해 저는, 무슨 재미로 사느냐는 질문을 종종 받는 사람입니다. 대신 걷는 것을 좋아합니다. 아무리 읽어도 다 따라잡을 수 없을 만큼 쏟아져 나오는 좋은 책들을 놓치지 않고 읽으려 시도하지만, 읽은 책들만큼이나 아직 못 읽은 책들이 함께 꽂혀 있는 저의 책장을 좋아합니다. 사랑하는 가족과, 다정한 친구들과 웃음과 농담을 나누는 하루하루를 좋아합니다.


그렇게 담담한 일상 속에서 제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쓰고 싶은 소설을 마음속에서 굴리는 시간입니다. 아직 쓰지 않은 소설의 윤곽을 상상하고, 떠오르는 대로 조금 써보기도 하고, 쓰는 분량보다 지운 분량이 많을 만큼 지우기도 하고, 제가 쓰려는 인물들을 알아가기 위해 여러 방법으로 노력하는 과정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


< 문학이 온다, 문학과 작별하지 않는다>


저는 술을 조금씩 자주 마십니다. 최근에는 건강을 생각해 커피는 하루에 한 잔만 마시고 전통차도 마시기 시작했습니다. 직접 가지는 못 하지만 여행 유튜브를 보며 만족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저는, 무슨 재미로 사느냐는 질문이 필요 없는 사람입니다. 걷는 것을 즐기다가 요즘은 러닝에 빠져서 마라톤 대회까지 나갑니다.


하지만 읽지 않아도 매일 쏟아져 나오는 좋은 책들을 많이 놓치고 살았습니다. 겨우 읽은 책들이 꽂혀 있던 책장도 얼마 전에 대부분 정리했습니다. 사랑하는 가족과, 다정한 직장 동료들과 웃음과 농담을 나누는 시간도 줄어들고 있고 예전 친구들을 만나는 것도 부담스럽습니다.


그렇게 특별하지 않은 일상 속에서 제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하고 싶은 수업과 쓰고 싶은 글을 마음속에서 굴리는 시간입니다. 각별히 요즘은 글에 대한 애정이 솟아납니다. 아직 쓰지 않은 글의 윤곽을 상상하고, 떠오르는 대로 조금 써보기도 합니다. 여기에 글을 쓰는 분량보다 지운 분량이 많으면 좋으련만, 글을 쓰려는 대상의 속사정을 알아봤으면 좋으련만 더 노력하지 못했고 게을렀습니다.


한강 작가의 노벨 문학상 수상 소식을 접하고 스무 살 언저리의  저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국문학과에 지원하고 교수님 앞에서 면접을 보던 날, 저는 "작가가 되고 싶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어떤 글을 쓰고 싶냐는 물음이 이어졌고 "소설을 쓰고 싶습니다."라고 망설이지 않고 답했지요. 그러자 교수님이 "그럼 문창과에 가지, 왜 국문학에 왔지." 했는데, 그게 혼잣말인지 질문인지 몰라서 멍해졌던 느낌이 또렷합니다.


다음 해에 국문학과에 입학한 저는 하필이면 시를 쓰는 선배들을 잘못(?) 만나서 과 내의 '시 창작단'에 들어갔습니다. 한강 작가가 그랬던 것처럼, 선배들이 건네준 목록에 있는 시집을 읽고 매주 세미나를 했습니다. 또 잠을 설치며 창작한 시로 합평회를 했고, 선배들과 함께 공동 시집을 내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대학 시절, 한 손은 시집을 잡고 있었고 다른 손엔 사회과학 서적이나 학생회 문건이 들려있었습니다. 군대에 갔다 와서도 소설보다는 시를 많이 읽었습니다. 소설은 단편을 주로 읽었고, 장편소설에 손이 가는 경우는 거의 없었습니다. 공지영의 <더 이상 아름다운 방황은 없다>, 혹은 무라카미 하루키처럼 모르면 무시당하는 작품만 겨우 읽었지요. 대학 졸업 후에 백수가 되어서 다시 소설을 써보려고 했습니다. 꽤 많은 '발단'을 썼다 지웠다 했지만, '전개' 부분에서 더 이상 전개가 되지 않아 결국 완성한 작품이 한 편도 없었습니다.


교육대학원에서 교직을 이수하고 교사가 된 후로도 비슷했습니다. 교과서에는 없는 시로 활동지를 만들어 수업하는 데 열심이었지만, 소설에는 손이 잘 안 갔습니다. 소설을 쓰고 싶은 마음도 사라졌습니다. 30대 초반에는 시를 써서 신춘문예에 투고하기도 했지만, 그 후로는 간혹 떠오르는 느낌을 시나 수필로 끄적이면서 여기까지 온 것 같습니다. 그동안 먹고 사느라 바쁘기도 했지만,  '소설, 아니 문학가의 먼 시선과 긴 호흡은 내 것이 아니다'라는 결론 뒤로 숨었기 때문입니다.


요즘 저의 사는 재미는 모두 한강에서 나와 한강으로 흐릅니다.  학교와 집에서 한강 작가의 소설을 읽고 있고, 한강 작가가  나오는 유튜브 영상을 보고, 관련 기사나 SNS  글을 계속 읽어도 질리지 않습니다. 한강 작가가 전해준 문학에 대한 열정이 마음속에서 조금씩 연기를 피우고 있음을 느낍니다. 한강 작가는 '70세, 80세까지 현역으로 활동하는 작가들도 있지만 그것은 여러모로 행운이 따라야 하는 일'이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이미 '한강 작가의 노벨 문학상 수상'이라는 강력한 행운을 하나 얻었습니다.


커피는 60세에 끊겠습니다. 술은 70세까지만 마시겠습니다. 대신 운동을 많이 하고, 소설을 비롯한 좋은 책을 놓치지 않고 읽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얼마 남지 않은 교사 생활에서 학생과 동료를 평등한 친구로 생각하면서 그들의 삶에 더 다가가고 싶습니다. 결이 맞지 않는 이들은 우아하게 멀리하는 지혜도 실천하겠습니다.


그것이 몇 년 후가 될지 몇십 년 후가 될지 모르겠지만 쓴 시를 모아 시집을 내고, 시간과 능력이 허락하면 소설도 쓰고 싶습니다. 이런 마음을 먹을 수 있는 것도 이 공간이 있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블로그에 글을 제대로 쓰기 시작한 지 10년이 되어갑니다. 마음속으로 굴리고 글이 없다면, 그 글에 공감을 눌러주고 댓글을 달아주는 이웃이 없다면 쓸쓸할 것 같습니다. 이글을 읽은 분들께도 더 많은 문학이 와서, 문학과 영원히 작별하지 않는 행복한 삶이 이어지길 소망합니다. 감사합니다.





작가의 이전글 '詩스타그램'을 위해 인스타, 스레드를 시작했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