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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수샘의 장이불재 Dec 11. 2024

노벨문학상보다 소중한 한강의 '조용한 날들'

- 시상식을 보며 한강의 시를 읽었다

조용한 날들

               - 한강


아프다가


담 밑에서

하얀 돌을 보았다


오래 때가 묻은

손가락 두 마디만 한

아직 다 둥글어지지 않은 돌


  좋겠다 너는,

  생명이 없어서


아무리 들여다봐도

마주 보는 눈이 없다


어둑어둑 피 흘린 해가

네 환한 언저리를 에워싸고


나는 손을 뻗지 않았다

무엇에게도


아프다가


돌아오다가


지워지는 길 위에

쪼그려 앉았다가


손을 뻗지 않았다



- 한강은 어릴 때부터 자주 아팠다고 한다. 대학에 가고 전업 작가가 되고 나서는 마음도, 영혼도 같이 아팠을 것이다. 여리고 약하고 순수한 존재에게 가해지는 모든 폭력을 자신의 아픔으로 껴안고 시를 쓰고, 소설을 썼다. 그 시간 동안 한강에게 '조용한 날들'은 얼마나 있었을까? 몸과 마음과 영혼이 아프지 않은 날이 얼마나 되었을까?


  그래서인지 한강은 생명이 없는 '하얀 돌'이 부럽다. 그리고 핏빛 석양 아래서 쪼그려 앉아 무엇에게도 손을 뻗지 않는다. 자신과 같은 생명을 가진 존재가 마주 보는 눈, 그 시선이 주는 고통을 피하고 싶었으리라.


  그러나 한강은 자신처럼 아픔을 느끼는 생명에게 손을 뻗었다. 몸을 일으켜 '지워지는 길' 위를 걸었다. 창작의 고통이 가장 컸을 장편 소설을 써나가는 길이었다. 그런 통증의 공명이, 고통의 고백이, 꺼져가는 생명에게 내민 손길이 쌓이고 뭉치고 단단해져서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그 빛이 노벨 문학상이라고 새겨진 메달이 되었다. 


  그 메달이 한강에게 생명이 없고, 마주 보는 눈이 없는 하얀 돌이 되지 않길 바란다. 덜 아프고, 오래오래 우리 곁에서 글을 쓰면서 우리의 영혼을 깨우는 시와 문장을 낭송해 주면 좋겠다. 앞으로의 한강의 날들도 조용했으면 좋겠다.


  추신. 계엄령 해제가 안 됐으면 한강도 웃지 못했을 것이다. 한강의 환한 미소를 보니 아침부터 눈물이 났다.  안구가 건조할 틈이 없다. 땡큐, 한강..



https://youtu.be/vw_gnO0dRvw?si=nGoWLLTXYAGdnk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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