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시민의 <문과 남자의 과학 공부>를 겸손하게 읽으며

- '겸손한 바보'가 좋은 세상을 만든다

by 글쓰는 민수샘



내가 바로 '거만한 바보'였다. 나는 물질세계에 대해 거의 전적으로 무지했다. 우주·은하·별·행성·물질·생명·진화 같은 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살았다. 그래도 괜찮았다. 문과니까.
하지만 '인간이 무엇인지' 모른다는 건 보통 문제가 아니었다. 게다가 나는 내가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도 몰랐다. 내가 옳다고 믿는 이론이 옳다는 증거가 있는지 여부를 따져보지 않았다. 그러면서 인간과 사회에 대해 알만큼 안다고 생각했다. 내 생각이 진리인 양 큰소리를 쳤다. 내가 바보라는 생각을 하니 심사가 뒤틀렸다. 민망함·창피함·분함·원망스러움을 한데 버무린 것 같은 감정이 찾아들었다.
'거만한 바보'를 그만두기는 쉬웠다. '난 아는 게 별로 없어.' 그렇게 인정하고, 내가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 점검하는 습관을 익히면 되는 일이었다.


<문과 남자의 과학 공부>는 유시민 작가가 스스로 '거만한 바보'였음을 고백하는 이 부분만 읽어도 책값은 다 한 것 같다. 1부 '그럴법한 이야기와 확실한 진리'를 읽으며 인간은 모두 자신과 사회, 자연과 우주에 관해 모르는 것이 훨씬 더 많은 바보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리고 세상에는 '거만한 바보'와 '겸손한 바보' 두 가지 인간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인간과 자연에 관해 모르는 것이 훨씬 많다는 것을 쿨하게 인정하면 겸손한 바보가 된다. 우리나라 민주주의가 최대 위기를 맞고 있는 지금, 앞으로의 교육 목표가 아이들이 스스로를 겸손한 바보로 인식하도록 만드는 것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 점검하는 습관을 지닌 아이들은 능동적인 학습자가 될 것이고, 타인과 소통하며 협력하는 민주주의자로 성장할 수 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거만한 바보가 권력을 가지면 반드시 다른 사람들에게 불행이 닥친다. 이들은 인간과 사회, 자연을 이해하려는 욕망보다 얕은 지식과 미천한 경험을 진리로 여기고 타인을 도구로 취급하면서 세속적 욕망을 충족하기 위해서만 열심히 살고 있다. 유시민 작가는 '인간의 뇌가 생물학적으로 진화해 자신을 이해하려는 욕망을 버리지 않는 한 인문학이 사라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라고 했지만, 인문학은 물론 자연과학마저도 돈벌이의 수단이 되는 경우가 많아서 걱정이다.


학교에서 아이들을 만나면서, 독서 방법에 관해 이런 말을 자주 했다. "만약 어떤 책을 읽어야 할지 잘 모르겠다면 도서관에 가서 일단 두 권의 책을 잘 고르면 된다. 한 권은 내가 잘 알고 관심 있는 분야의 책 중에서 가장 어려워 보이는 책, 다른 한 권은 전혀 관심 없고 잘 모르는 분야에서 가장 쉽고 재미있어 보이는 책을 골라 읽는 것이다." 나 역시 이 말을 제대로 실천하지 못했지만, <문과 남자의 과학 공부>를 끝까지 읽고 뇌과학과 양자역학, 수학의 아름다움까지 이해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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