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혜은 시인의 '여름 불청객'
여수 바다와 곡성의 계곡으로 여행을 다녀온 지 1주일이 지났다. 그때는 좋았으나, 그 후로 아들 둘과 함께 보낸 나의 여름 방학을 세 줄로 요약해 보면…
1. 밖에 나가면 너무너무 덥다.
2. 밖에 안 나가니 에어컨의 노예가 되었다.
3. 밖에 안 나가면 노예 신세, 밖에 나가도 자유가 없다.
이런 짜증 나는 상황에서 그나마 손에 잡히는 것이 시집이다. 조혜은 시인의 시집 <털실로도 어둠을 짤 수 있지> 중에서 '여름 불청객'이 가장 여운이 남았다.
모래에 얼굴을 묻게 되는 마음이 있어
우리는 설렜다
표정이 많은 사람
표정이 없는 얼굴로
기나긴 표정을 흉내냈다
휴가나 해변은 어울리지 않아
여덟 시간 동안 바다에 있었다
언제든 끝낼 수 있다고 믿었다
단추가 풀어진 검은 셔츠와 단정하게 올라간 옷깃을
반쯤 접어올린 소매와 체온을 발음하는 목덜미의
끝나지 않는 여름의 결연과 절연
악의를 가늠할 수 있기 때문에
돌아오는 여행의 끝에서
오후는 있거나 없고
끝나지 않는 비소식이
꿈에서 만나
걷는 것 말고는
사랑을 빼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 말고는
쓸 수 없는 무언가가 이루어져도
아무것에도 이를 수 없었지만
도망자처럼 스치듯
귀기울여주었지
너는
머물게 하고 싶지만 갔어야 하는 사람
무례하게도 선량한 슬픈 사람
그곳은 너의 표정과 비슷했으나
결코 이루어지지 않을 나의 세계
모든 행복은 불안했고
묽은 죽을 쑤는 여인처럼 처량했지
여름은 더이상 요약되지 않았다
'우리'도 한때는 햇볕이 쨍한 여름 바닷가에서 마음이 설렜다. 하지만 지금은 '여덟 시간 동안 바다에 있'는 것이 불가능하다. 이 길고 무더운 여름과의 결연은 잔혹하고 절연은 아득하다.
이 시에서 시인은 '너'를 '무례하게도 선량한 슬픈 사람'이라고 추억하지만, '나'와 미래의 '우리'는 여름이 '더 이상 요약되지 않는다'라고 처량하게 말할 수 없겠지.
지금의 여름은 불청객이 아니라 '주인님'이다. 인간의 대지와 영혼과 관계가 허무하게 녹고 있다. 이렇게 쉽게 요약된다는 것이… 노예 신세 주제에 무례하게도 슬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