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이 학급 수업은 망했어'라는 생각이 들 때

- 교사의 10월 이야기 (2)

by 글쓰는 민수샘

20대의 자조적인 푸념인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어)'만큼 절실하진 않지만, 해마다 10월쯤 되면 '이수망(이번 해 수업은 망했어)'까지는 아니더라도 '이학망(이번 해 이 학급 수업은 망했어)'가 떠오르는 건 어쩔 수 없네요. 그래서 올해의 남은 수업일수를 헤아리면서 새출발을 하고 싶은 마음이 듭니다.

'이학망'을 되뇌이게 만드는 학급의 공통점은 무엇일까요? 학습의지가 없는 무기력한 학생들과 수업을 방해하는 무례한 학생들이 많고, 학생간의 학력 차이도 크면서 서로 관심이 없거나 심한 경우 사이가 안 좋은 경우도 있습니다.

이렇게 힘든 학급도 3, 4월에는 희망이 보였는데 왜 이렇게 무너지는 아이들이 많아졌을까, 고민이 됩니다. 그 학급의 문제를 저만 겪는 것은 아니지만, 배움의공동체 수업을 실천하기 시작하면서 거리를 두었던 '협력을 하게 만드는 장치'에 대한 유혹을 느끼기도 합니다. 경청과 협력의 자세가 부족한 아이들이 많은데 언제까지 자발성을 기대해야 하는가, 아무리 수업준비를 많이 해와도 아예 눈을 뜨지 않거나, 옆의 친구와 말을 섞지 않는다면 무슨 소용이 있을까, 하는 상념들이 지나갑니다.

그래서 도움을 받기 위해 도서관에서 새로 나온 수업 관련 책들을 훑어보았지요. 그러다가 시선을 잡는 구절이 있었어요. '학습과정에 있어서 집단 속에 자신을 감추는 일이 없도록 조장, 발표자, 기록자, 도우미 등의 구체적인 역할을 제시하고 그에 대한 책임을 엄격하게 물어야 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또 '모둠별로 협력 과제를 수행할 때는 각 모둠원의 역할 기여도를 평가해서 가중치를 두어 점수를 달리 주면 불만이 사라진다'는 내용도 눈에 띄였고요. 정말 열심히 수업하시는 선생님들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이런 방법을 사용했다면, 그 학급에서 모둠활동이 계속 잘 되었을까? 자는 아이가 깨어나고, 서로의 말을 경청하고, 친절하게 서로 묻고 답하면서 협력했을까?' 스스로에게 물어보게 되었습니다. 음… 역시 어려운 질문입니다.

그러다가 학교 안팎의 교사워크숍이나 연수 장면이 떠올랐어요. '선생님들! 모둠에서 역할을 정해줄게요. 자기 역할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벌칙이 있어요. 정해진 시간 내에 마쳐야 하고 잘 한 모둠은 보상이 있어요."라고 요구하지는 않았습니다. 이런 장치가 없어도, 아니 없어서인지 편안한 분위기 속에서 대화가 시작되고 토의가 깊어졌지요.

아직 미숙한 학습자이고 객관적으로 평가를 해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수업에서는 모둠활동의 장치가 필요한 경우도 있겠지만 1년 내내 사용하는 것은 오히려 교사가 더 힘들어질 것 같아요. 선의의 경쟁도 경쟁이고, 적당한 보상도 보상이기 때문이지요. 또 한 번 정해진 모둠내 역할은 고정되기 쉽고 무임승차나 활동을 방해하는 아이들이 생기면 더 엄격한 규칙을 새로 만들어야 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이들을 성숙한 학습자로 인정하고 먼저 신뢰하고 싶습니다. 특히 중학교 고학년이나 고등학생이 되면 협력의 가치를 알고는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말로 하는 설명이 아니라 교사의 경청과 겸손한 자세이고, 매력적인 주제를 던지고 수준 높은 배움으로 이끄는 수업 디자인입니다. 저는 모둠에서 각자 자기 과제를 하지만 옆의 친구에게 편하게 물어볼 수 있는 분위기를 위해 멘토-멘티를 굳이 정하지 않고 있어요. 모둠활동을 함께 하지만 평가는 발표, 활동지, 글쓰기 등으로 개별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또 점프과제는 교과서 수준을 조금 뛰어넘는 것을 가지고 와서 1등 하는 아이도 겸손하게 친구와 머리를 맞댈 수 있게 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수업이 어려운 학급에 들어가는 동료교사와 함께 실천한다면 아이들의 변화가 더 빨리 일어나겠지요.

또 모둠활동을 할 때 '어떤 아이'에게는 숨을 곳이 있어야 할 것 같아요.^^; 다른 사람에게는 말하기 힘든 아픔을 겪고 있는 아이일 수 있으니까요. 모둠 내에서 자율적으로 역할을 정할 때 중요한 역할을 맡지 않더라도, 대부분 집중하지 못 하고 다른 아이들과 멀어져 있더라도 '억지로' 단순한 역할을 맡게 하는 것보다 '다른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어볼래? 네 생각은 어떠니? 이거 읽어봤니?'하고 교사가 먼저 말을 걸고 기다려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아이들도 그런 교사를 보고 친구의 상황을 이해하고 진심으로 도와주려는 마음이 생겨날 수도 있겠지요.

그렇게 아이들을 연결짓는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저의 성찰로 두서없는 글을 마무리해야겠네요. 다른 교사나 아이들은 몰라도 부족한 점을 저는 알고 있지요. 그래서 모둠활동을 하는 과정은 교사에게 철학이고 예술이고, 예측 불가능하지만 때론 아름다운 인생 자체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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