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교사의 10월 이야기 (3)
1차 지필고사가 끝나고 첫 국어수업 시간에 성적 확인하고, 영화 '꾸뻬 씨의 행복 여행'을 보여줬어요. 다음 시간에 '행복은 어디에서 오는가?'를 주제로 한 수행평가의 마지막 글쓰기를 해서, 참고용으로 보여줬지요. 120분짜리를 39분으로 편집하느라 1시간 이상 걸렸는데 집중해서 보는 아이들이 많이 없어 슬펐지만 영화를 여러 번 보니 저는 더 좋았어요.
영화의 주인공인 정신과 의사 헥터가 아프리카에서 의료 봉사를 하는 친구 의사를 찾아가는 장면에서, 행복의 여덟번째 정의가 나옵니다.
8. HAPPINESS IS ANSWERING YOUR CALLING. (행복은 소명에 응답하는 것)
저는 교직을 소명의식을 가지고 시작한 것도 아니고 천직이라고 느끼기엔 부족한 점이 많지만, 이 장면에서 울림이 컸어요. 영화에서 본 헥터의 친구 의사도 그랬고, <울지마 톤즈>에서 봤던 고 이태석 신부님의 모습도 무척이나 편안하고 즐거워보였습니다. 대단한 사명감과 목적을 가지고 아프리카에서 진지하게 봉사하는 모습이 아니라, 그 자리에서 그곳에 사는 사람들과 함께 한다는 것 자체가 좋아보였습니다.
그래서 저를 교사라는 직업으로 부른 것이 무엇이었나, 잠시 생각해보았어요. 고3 때 어떤 학과에 지원할까 고민하다가, 국어국문학과에 가면 '넥타이를 메지 않아도 되는 직업'을 선택할 수 있을 것 같아서 결정했습니다. 뻔한 회사 생활, 복잡한 결재라인과 보고에 서류뭉치에 둘러쌓여 지내는 것이 '불편'했나 봅니다. 제가 왜 그랬을까요?
저는 아주 어릴 때부터 저보다 나이 많은 사람들과 함께 있는 것이 유독 싫었던 것 같아요. 친척집에 가는 것도 싫었고, 잘못한 것이 없어도 선생님이 부르면 심장이 펌프질을 마구 해댔어요. 대학에 가서도 교수님, 선배님과 함께 있는 자리는 빨리 피하고 싶었지요. 소심한 성격에 자존감도 낮아서 그랬나 봅니다.
그런데 대학 2학년이 되고 후배들이 생기니까, 학교 생활이 재밌어졌어요. 문학 동아리, 학생회 활동을 하며 후배들에게 썰을 풀고 술 먹이고 놀리고 하는 것에 두각(?)을 나타냈어요. 농활을 가서도, 청년회나 부녀회분들 앞에선 바보처럼 있었지만, 중고생 아이들과 앞에서는 신나게 떠들었지요.
대학을 졸업하고 돌고 돌아서 교육대학원에서 교직을 이수하면서, 처음으로 작은 학원에서 예비 중학교 1학년 까까머리 아이들을 가르칠 기회가 있었어요. 참 귀여운 아이들이었고, 공부보다 같이 눈싸움도 하고 간식도 먹으면서 놀아주었지요. (그래서 두 달만에 잘렸지만요.ㅋㅋ)
교직 20년이 가까워지고 있는 지금은, '나보다 나이 어린 사람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며 놀아주고 이야기를 들어주고 도움을 주는 것'이 저의 소명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아이들이 밝은 목소리로 '선생님!'하고 부르면 참 마음이 편해집니다. 아이들과 함께 있으면 그래도 시간이 잘 갑니다. 아이들이 다 다르고, 때로는 황당하고 신기해서 보는 재미가 있습니다. 교무실에서도 모두가 어려운 수업을 평등하게 하고 아이들과 부대끼는 교사들이라 의지가 됩니다.
학창시절에 부반장도 한 번 못해 봤는데, 교실에서는 제가 골목대장이니까 좋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대장 노릇을 잘 하기 위해서 아이들의 부름에 제대로 응답하고 싶습니다. ^^